가상자산 투자 열기가 꺾이고 있다. 업비트와 빗썸 등 국내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에서 최근 거래량이 큰 폭으로 감소했고, 국내와 해외의 비트코인 거래 가격 차이를 뜻하는 ‘김치프리미엄’도 상승장 때와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1일 가상자산 통계분석 플랫폼인 코인게코에 따르면 전날 오후 6시 기준 업비트의 하루 거래량은 20억7219만달러(약 2조8700억원)를 기록했다. 이는 올해 들어 같은 시각 기준으로 하루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지난 3월 5일에 비해 7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당시 거래량은 151억8905만달러(약 21조원)에 달했다.
빗썸에서의 거래량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전날 빗썸의 하루 거래량은 3월 30일의 절반 수준인 4억9258만달러(약 6810억원)에 그쳤다. 빗썸은 지난 2월 5일 거래 수수료 유료화 전환 이후 거래량이 한동안 감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코인 가격 상승과 함께 거래량도 회복세로 돌아섰고, 2월 말에는 하루 거래량이 25억달러(약 3조5000억원)에 이르기도 했다.
업비트는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으로 현재 점유율이 85%를 웃돈다. 2위 플랫폼인 빗썸의 점유율은 10%대를 기록 중이다. 사실상 두 거래소의 합산 거래량을 통해 국내 가상자산 시장 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 가상자산 거래는 2월 중순 이후 빠르게 증가했다. 올해 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출시를 승인한 이후 주요 코인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자, 한동안 가상자산 시장을 떠났던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다시 거래에 나선 것이다. 국내에서 코인 매입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 말 5000만원대에 거래가 됐던 비트코인은 불과 3개월 만에 1억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국내 가상자산 거래량은 지난 3월 중순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9000만원대에서 한 달 넘게 제자리걸음을 이어가면서, 차익 실현 매도는 늘어난 반면 신규 투자 수요는 감소했다. 여기에 지난달 20일 비트코인 반감기(블록당 채굴 보상이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를 지난 후 가격 상승을 이끌 호재가 사라지자, 거래량은 더욱 줄었다.
국내에서 코인 투자 열기가 식어버리면서, 김치프리미엄 역시 축소됐다. 전날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바이낸스에서 비트코인은 6만2536달러에 거래됐다.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을 반영하면 원화 기준 가격은 8649만원이다. 같은 시각 업비트에서는 비트코인 가격이 8912만원에 형성돼 있다. 약 3%의 김치프리미엄이 형성된 것이다. 지난달 강세장에서 김치프리미엄은 약 7%를 기록했다.
한국에서의 거래량 감소는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화폐)의 가격 하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이더리움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알트코인 투자를 선호한다. 알트코인은 변동 폭이 크기 때문에 강세장에서 비트코인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가상자산 거래가 줄어들면 비트코인보다 알트코인이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국내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3월 말 1억원에서 전날 8880만원으로 1개월간 11.2% 하락했다. 같은 기간 이더리움은 515만원에서 442만원으로 14.1% 떨어졌다. 반면 도지코인(-33%), 솔라나(-33%), 월드코인(-45%) 등 국내에서 한동안 거래가 활발했던 알트코인은 하락 폭이 훨씬 컸다.
이 가운데 월드코인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챗GPT의 개발자인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발행한 가상자산이다. 홍채를 등록하면 코인을 무상 지급하는데,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개인 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규제를 받는 반면 한국에서는 거래가 가능하다. 월드코인 가격이 최근 급락한 것도 거래량이 많았던 한국에서 코인 투자가 줄어든 게 주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국내에서 당분간 거래량이 반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연기, 이란과 이스라엘의 군사 분쟁 등 시장 안팎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홍콩에서 전날부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ETF 거래가 시작됐지만, 출시 초반부터 신규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면서 “그레이스케일 등 미국 ETF 계좌에서 자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는 점도 악재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