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사가 56조원을 투자한 해외 부동산 시장의 손실 위험이 예상보다 커지고 있다. 중동발 물가 불안에 따라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하면서 국내 금융사의 투자가 집중된 북미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회복이 요원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빅테크 기업들의 인력 감축 등으로 미국 사무실 공실률도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도 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부실 위험을 확대하는 요인이다. 금융감독 당국은 예상보다 북미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회복이 더딜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금융사의 추가적인 손실 가능성이 커지자 손실흡수능력 확대를 유도하는 방안까지 살펴보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가 집중된 미국 상업용 부동산은 금리 인하 기대감이 옅어지면서 개선세가 둔화되고 있다. 지난달 기준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 지수는 2022년 4월 고점 대비 21.4%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중동 정세 악화로 인한 물가 불안으로 금리가 빠르게 인하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줄어들면서 미국 부동산 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경우 지난해 가치 하락분을 대부분 반영해 올해부터는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높은 금리 수준은 하반기부터 낮아지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회복세를 뒷받침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주거비, 석유 등 원자재 가격 강세 등으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지표가 높게 나오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크게 축소되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회복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미 지역의 사무실 수요마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 아마존, 메타플랫폼, 알파벳 등 빅테크 기업이 재택근무를 활성화하면서 사무공간을 줄여 미국의 사무실 공실률은 상승하고 임대료는 하락하고 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오피스 공실률은 19.8%로,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전보다 2.8%포인트 상승하며 사상 최고치 기록했다. 호가 임대료는 전분기 대비 0.14% 올랐지만, 실질 임대료는 오히려 0.04% 하락했다.
홍지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오피스 수요 축소 요인은 원격근무 활성화지만, 공급 과잉은 2000년도부터 이어진 오피스 건설 확대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공실률 고점 도달 시점이 불확실한 상황이다”라고 진단했다.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규모는 지난해 9월 기준 56조4000억원이다. 특히 북미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국내 금융사의 투자가 집중된 지역이다.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를 지역별로 나누면, 북미가 34조5000억원(61.1%)으로 가장 많다. 이어 유럽 10조8000억원(19.2%), 아시아 4조4000억원(7.9%), 기타 및 복수지역이 6조6000억원(11.8%) 순이다.
금융사들은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의 손실 가능성에 대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충당금을 쌓아둔 상황이다. 충당금을 쌓았다는 것은 부동산 부실에 따른 추가 손실 가능성을 사전에 대비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예상보다 해외 부동산 시장의 회복세가 더디면서 추가로 충당금을 적립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해외 상업용 부동산 시장을 보면 금융사가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라며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감이 사라지고 있고, 정보기술(IT) 기업의 사무공간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가치가 더욱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기에 이 부분에 대해 금융사도 대비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해외 부동산 투자 리스크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는 경우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금융권 총자산의 0.8% 수준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