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크립토닷컴이 이달 말 애플리케이션(앱)을 선보이며, 국내 사업을 시작한다. 크립토닷컴은 원화마켓 거래소를 열어 두나무, 빗썸 등과 경쟁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금융 당국이 해외 거래소의 국내 진출에 부정적이어서 실제 사업자 승인을 얻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전망이 나온다.
크립토닷컴의 에릭 안지아니 최고경영자(CEO)는 2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전경련회관)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오는 29일 크립토닷컴 메인 앱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앱은 비트코인을 충전해 다른 가상자산을 거래하는 코인마켓 거래 서비스로, 150여개의 가상자산과 대체불가토큰(NFT)을 사고팔 수 있다.
크립토닷컴은 지난 2021년 국내 코인마켓 거래소인 오케이비트의 지분 100%를 인수한 바 있다. 오케이비트가 보유한 국내 가상자산 사업자(VASP) 자격을 이용해 국내에서 크립토닷컴 브랜드로 코인마켓 거래 서비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가 국내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크립토닷컴은 지난 2016년 설립된 가상자산 거래소로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8000만명이 이용하는 세계 10위 거래소로 설립 후 누적 거래 규모는 10조달러에 이른다. 삼성전자와 네이버 라인, 스튜디오드래곤 등 여러 국내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이 거래소는 특히 미 프로농구(NBA) LA 레이커스와 프랑스 축구 리그의 파리생제르망(PSG) 등 유명 스포츠 구단과 밀접하게 협업하는 블록체인 사업자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LA 레이커스의 홈구장인 이 거래소가 소유한 '크립토닷컴 아레나'다.
크립토닷컴은 일단 코인마켓 거래소로 국내 사업을 시작하지만, 향후 원화마켓 거래소 시장에 진출하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패트릭 윤 크립토닷컴코리아 대표는 "일단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코인마켓 거래소라는 인식을 얻는 게 1차 목표"라면서 "원화마켓 시장에도 진출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준비해 왔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크립토닷컴의 원화마켓 거래소 시장 진출이 짧은 기간 안에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금융위원회가 해외 사업자가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강하게 막아왔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해외 거래소의 지배 구조가 불투명하고, 자금 세탁이나 불법 송금 등의 위험도 크다는 이유로 국내 진출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앞서 지난해 2월에는 세계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가 국내 5위 거래 플랫폼인 고팍스의 지분을 인수해 국내 진출을 시도했지만, 금융위는 지금껏 사업자 변경 승인을 내주지 않았다.
다만, 일각에서는 크립토닷컴의 경우 바이낸스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바이낸스의 경우 지난해 미국에서 불법 자금 세탁을 도움 혐의로 43억달러(약 5조8200억원) 규모의 벌금을 부과받는 등 여러 논란에 휘말렸지만, 크립토닷컴은 이 같은 문제가 없어 금융 당국이 바이낸스만큼 엄격한 잣대를 갖고 국내 진출을 막지는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 1위 사업자인 두나무의 독점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당국이 크립토닷컴의 진출을 보다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의 이유로 꼽힌다. 현재 두나무의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의 점유율은 80%를 넘는다. 2위 사업자인 빗썸의 점유율은 10%대에 불과하며 코인원과 코빗, 고팍스 등 소형 거래소는 한 자릿수의 점유율에 허덕이고 있다.
이 때문에 대형 해외 거래소인 크립토닷컴이 국내에서 '메기' 역할을 할 경우 업비트의 독점 구조를 완화하고, 거래소 간 가격 경쟁 등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립토닷컴은 최근 금융 당국과 접촉해 향후 원화마켓 거래소 사업권을 얻기 위한 조건 등을 전달받았다고 설명했다. 당국은 특히 자금 세탁 방지(AML)를 위한 역량을 강화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패트릭 윤 대표는 "당국이 AML 관련 인력을 최소 25명 이상으로 확보하라고 요구해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원화마켓 거래에 필요한 고객 실명계좌를 받기 위해 시중은행과도 협의를 해 왔다"면서 "충분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 큰 비용을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