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다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역 의사협회 중 가장 규모가 큰 서울시의사회가 실손보험 청구 서류 전송대행기관(중계기관) 선정을 두고 전면 재검토를 공식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금융 당국은 지난달 중계기관으로 보험개발원을 선정하고 오는 10월 시범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의료계가 중계기관 재선정을 요구할 경우 제도 시행이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31일 의료계와 보험업계에 따르면 서울시의사회는 최근 대의원 회의를 열고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재논의를 의사협회에 건의하기로 의결했다. 서울시의사회는 보험회사들이 출자해 설립한 보험개발원이 중계기관으로 선정된 점을 지적했다.
서울시의사회는 환자들의 의료 정보 보안에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실손보험을 통한 비급여 진료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보험사가 보험개발원을 통해 실손보험 데이터를 확인하다가 건강보험 대상이 아닌 비급여 진료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의사회는 중계기관을 의학정보원 등 의료계 측이 맡아야 한다며, 의료 정보가 보험계를 거치는 것을 끝까지 저지하기로 했다. 해당 안건은 대의원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정보원 설립은 임현택 신임 의협 회장의 공약 사항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주로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의료 정보를 의학계가 자체 설립한 기관에서 수집·활용하겠다는 취지다. 의협은 2016년 처음 의료정보원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사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의사회가 중계기관 재선정을 의협에 요구하기로 하면서, 오는 10월 시범사업 시행도 난항을 빚을 전망이다. 의료계 협조가 없으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시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임현택 회장은 지난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을 저지하겠다며 '실손공보험화저지연대'를 발족하기도 했다. 임 회장은 의료계에서 강성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서울시의사회도 의협 내 영향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현재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조직강화위원장을 맡고 있다. 의협이 의대 정원 반대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묶어 현 정부 정책을 반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해 말부터 금융 당국과 보험업계, 의료계는 중계기관 선정을 놓고 승강이를 벌였다. 금융 당국과 보험업계는 보험개발원을 원했으나, 의료계는 의료 핀테크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지난 2월 보험개발원이 중계기관으로 확정되면서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했다. 당시 의료계가 의대 정원 문제를 놓고 정부에 맞서면서 중계기관 선정은 관심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대형 의사 단체인 서울시의사회가 다시 반대 목소리를 내기로 하면서 갈등이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의협이 나서 중계기관 재선정을 요구하며 시범사업 불참을 선언하면 제도 시행은 쉽지 않다"며 "의대 정원에 대한 의료계 반발이 워낙 거세 보험업계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