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금융협회 CI

금융소비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여신금융협회의 '소비자 공시' 제도가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별도 내규 없이 협회가 자체적으로 기준을 정하다 보니 일부 자료만 공개하는 등 소비자 입장에선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다.

29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협회는 카드·캐피탈사의 '분쟁 중 소 제기 현황'을 공시하고 있다. 고객이 금융감독원에 제기한 분쟁조정 신청 건수와 신청 전·후로 제기된 소송 건수를 회사별로 분류해 공개하는 것이다. 고객들은 카드·캐피탈사의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신청 건수와 소 제기 건수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협회는 소송을 당하지 않은 회사에 대해선 관련 자료를 비공개 처리하고 있다. 분쟁조정 건수가 아무리 많아도 소송만 당하지 않으면 불리한 통계는 공개되지 않는 것이다. 고객 입장에선 오로지 소송을 당한 회사의 통계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7일 기준 협회는 오케이캐피탈 등 5개 캐피탈사의 분쟁조정 신청 건수(15건)와 소 제기 건수를 공개하고 있다. 롯데·비씨·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카드 등 전업카드사에 대한 통계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전업카드사들도 지난해 총 1452건의 분쟁조정을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신한카드는 749건의 금융분쟁을 겪었지만, 소송까지 이어지지 않았단 이유로 관련 통계가 비공개 처리됐다. 반면 오케이캐피탈은 3건의 분쟁조정이 제기됐지만, 소송을 1건 당했다고 모든 통계가 공개됐다.

여신금융협회가 지난 27일 공시하고 있는 자료(왼쪽)와 실수로 공개한 자료(오른쪽) 비교. 오케이캐피탈은 금융감독원에 제기된 분쟁조정 신청 건수가 3건밖에 되지 않지만, 소송을 1건 당했단 이유로 공시 대상이 됐다. 반면 전업카드사들은 수백건의 금융 분쟁을 겪었어도 소송을 당하지 않았단 이유로 공시 대상에서 빠져 있다. /여신금융협회 캡처

협회는 공시 유의 사항에 '소 제기 건이 있는 여신전문금융회사'라는 기준을 명시하고, 이를 따랐다고 해명했다. 전업카드사들이 소송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시 대상이 아니어서 분쟁조정 통계를 공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기준은 협회가 자체적으로 정한 것으로 별도 기준이 담긴 법률·시행령은 물론 내규조차 없다. 협회 관계자는 "금융 당국과 협의해 소 제기 건이 있는 회사만 보여주는 것으로 됐다"며 "법적인 공시가 아니고 당국의 행정지도 성격이다"라고 설명했다.

특히 협회는 분기별 통계를 공개하면서도 4분기가 도래하는 시점에서 기존 1~3분기 자료는 삭제한다. 지난해 3분기까진 분기별 분쟁조정 건수를 공개하지만, 4분기가 되면 기존 자료는 삭제되고 해당 연도 누적 건수만 공개하는 것이다. 고객은 어떤 회사가 어떤 기간에 얼마만큼의 분쟁을 겪었는지 파악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도 협회가 자체적으로 정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시 담당자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엉뚱한 통계가 공개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지난 26일 협회는 롯데·비씨·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카드 등 전업카드사의 분쟁조정 신청건수를 공개하고 있었는데,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당하자 뒤늦게 "담당자 실수"라며 공시를 수정했다. 현재는 전업카드사의 분쟁조정 건수를 확인할 수 없다.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분쟁조정 신청 전·후 소송 제기가 없는 경우에는 (관련 통계를) 보여주지 않도록 설정이 되어 있다"라며 "현재 담당자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해 모든 통계를 오픈한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