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두나무 대표가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코인게이트 진상조사단 제4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3일 국내 법학, 경제학 교수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금융연구포럼'의 창립 기념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이석우 대표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국내 5대 가상자산거래소의 최고경영자(CEO) 중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이 대표가 유일했다. 그는 세미나가 끝난 후 중앙에 위치해 기념촬영까지 함께했다. 가상자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소규모 학술 모임에 거대 기업의 CEO가 홀로 참석하고 기념사진까지 찍는 경우는 흔치 않다"면서 "두나무가 포럼의 후원자로 나선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금융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정부와 금융 당국이 추진할 가상자산의 제도화와 증권성 판단 등을 앞두고 두나무가 한발 앞서 우군(友軍)을 만들기 위해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이 금융연구포럼은 금융법과 가상자산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다수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의 창립을 주도한 인물은 정순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국내 금융법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학계뿐 아니라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과 금융위원회 비상임위원 등을 역임하며 금융 시장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다. 현재도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이정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등도 금융위의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으로 일하며 주로 가상자산의 규제와 제도화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가상자산업계에서는 두나무가 특히 금융 당국이 진행할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에 대비하기 위해 금융법 분야 전문가 등과 관계를 구축하려 애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당국이 어떤 범위까지 증권이라고 판단하는지에 따라 앞으로의 사업과 실적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픽=김윤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은 최근 업계에서 가장 촉각을 세우는 이슈다. 지난 2022년 테라 폭락 사태를 일으킨 주범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의장이 최근 국내로 송환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증권성 판단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일찌감치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테라를 증권으로 규정하고 법원의 인정까지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금융 당국이 특정 가상자산에 대해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을 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권도형씨가 국내로 송환될 경우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면서, 당국이 신속하게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 판단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만약 금융 당국이 상당수 가상자산에 대해 증권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두나무를 비롯한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들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내 거래소들은 수익의 대부분을 코인의 거래 중개 수수료로 얻는데, 코인이 증권형 토큰으로 분류될 경우 한국거래소로 중개 권한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두나무 등 거래소들이 불법 거래 중개로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미국 SEC는 리플과 솔라나, 폴리곤, 에이다 등 19종의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규정한 후, 이 코인들의 거래를 중개한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 등 거래소들을 지난해 6월 증권법 위반으로 제소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은 금융 시장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예민한 이슈다"라면서 "여러 금융법, 가상자산 규제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성 판단 이외에도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허용 등 여러 제도적 변화를 앞두고 있어 가장 큰 이해 당사자인 두나무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