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뱅크가 코인 투자자의 입출금 한도 상향 조건을 다시 강화하기로 했다. 지난 5일 조건을 낮춘 후 가상자산 업계와 은행권에서 업비트의 독점 구조가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늘어난 데 따른 결정으로 풀이된다. 사진은 서울 을지로 케이뱅크 사옥 전경. /케이뱅크 제공

케이뱅크가 가상자산 거래를 위한 입출금 계좌의 투자 한도 상향 조건을 다시 강화하기로 했다. 케이뱅크는 이달 초 가상자산 투자자들이 첫 입금을 한 후 하루 5억원까지 투자 한도를 늘릴 수 있는 제한 기간을 기존 30일에서 3일로 단축했다. 이로 인해 케이뱅크가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거래소 업비트의 독점 구조가 심화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결국 한 달도 안 돼 방침을 바꾼 것이다.

25일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케이뱅크 경영진은 이날 회의를 열고 가상자산 한도 계정 해제 조건을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첫 입금 후 한도 계정에서 정상 계정으로 전환되는데 대기하는 기간은 3일에서 30일로 다시 연장됐고, 매수 최소 금액도 300만원 이상에서 500만원 이상으로 늘었다.

은행연합회는 지난해 11월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가상자산 실명계정 운영지침'을 마련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가상자산에 처음 투자하는 사람은 일단 한도 계정을 받아 일정 기간 투자 금액에 제한을 받게 된다. 이후 시간이 지나 정상 계정으로 전환이 되면 입출금 한도가 크게 늘어난다.

한도 계정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에 한 번에 500만원까지만 입금을 할 수 있으며, 하루 최대 입금액도 500만원으로 제한된다. 정상 계정으로 전환이 되면 한 번에 1억원, 하루 최대 5억원까지 입금할 수 있다. 출금 역시 한도 계정은 한 번에 5000만원, 하루 최대 2억원으로 제한돼 있지만, 정상 계정에서는 한 번에 1억원, 하루 최대 5억원까지 할 수 있다.

지침에 따라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케이뱅크와 NH농협은행(빗썸), 신한은행(코빗), 카카오뱅크(코인원), 전북은행(고팍스) 등은 가상자산 투자자가 첫 입금을 한 후 30일이 지나야 한도 계정에서 정상 계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적용해 왔다.

그러나 케이뱅크는 2개월이 지난 이달 5일부터 투자자가 첫 입금을 한 후 3일만 지나면 정상 계정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돌연 방침을 바꿨다. 케이뱅크는 내년 증시 상장을 추진 중인데, 올해 실적을 눈에 띄게 개선하려는 목적에서 가상자산 입출금 한도 제한을 완화한 것이다.

올해 들어 비트코인을 포함한 주요 가상자산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시장에 새로 진입하려는 투자자들도 계속 늘고 있다. 신규 투자자들은 1개월 동안 하루 500만원까지만 투자할 수 있는 타 거래소보다, 3일만 지나면 억대의 투자가 가능한 업비트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가격이 나오는 전광판 앞에서 한 투자자가 시세를 검색하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케이뱅크의 입출금 한도 제한 완화로 현재 가상자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인 업비트의 독점 구조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늘었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통계 분석 플랫폼인 코인게코에 따르면 25일 기준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 가운데 업비트의 점유율은 82%를 넘는다. 2위 거래소인 빗썸은 15% 수준이며, 코인원은 1.6%에 불과하다. 코빗, 고팍스의 경우 점유율이 1%에도 미치지 못 한다.

이로 인해 이달 초 케이뱅크가 입출금 한도 상향 조건을 완화하자, 거래소들과 이들에게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은행들은 업비트의 점유율이 더욱 상승하고 중소형 거래소들은 존폐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케이뱅크가 한 달도 안 돼 입출금 한도 상향 조건을 다시 원점으로 돌린 것도 업계와 금융권의 원성을 부담스럽게 여겼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지난 5일 한도 상향 조건을 완화한 후 운영 현황을 계속 분석해 왔다"면서 "현재의 시장 상황과 경쟁사들의 입장, 이해관계자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날부터 조건을 다시 강화하기로 방침을 바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