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대체불가토큰(NFT) 프로젝트는 어떻게 하면 한국 작가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을지 오랜 기간 고민한 끝에 나온 도전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도자기 ‘달항아리’ 그림을 그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최영욱 작가를 지난 14일 경기 파주시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미술작품과 NFT의 접목이라는 생소한 도전에 나선 배경을 묻자 최 작가는 “누구에게 돈을 벌어다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렇게 답했다. 최 작가는 지난 18일부터 자신의 달항아리 그림 karma 2024 1-42의 NFT를 판매하고 있다. 가로 230㎝, 세로 200㎝로 최 작가의 작품 중에선 가장 크다. 가격은 43이더리움(한화 약 2억1600만원)이다.
최 작가의 NFT 프로젝트는 하나의 작품을 여러 명이 동시에 소유하는 조각투자와 다르다. 실물 작품은 하나은행이 보관하고, 작품의 소유권이 담긴 NFT는 1개만 발행돼 거래된다. NFT 구매자가 작품을 독점 소유하는 형태다. NFT가 재판매되면, 작품 소유권만 넘어가는 방식으로 예술품을 손쉽게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 NFT는 예술적 가치가 없는, 예술품을 거래하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된다는 점에서 기존 디지털아트와도 궤를 달리한다.
최 작가는 “작가가 가상자산을 이야기하는 게 조금 그렇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취지와 달리 가상자산 투자를 부추기거나, 암호화폐를 벌어들이기 위한 수단을 제공하는 작가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최 작가의 명성은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최 작가의 작품 57점 중 51점이 경매에서 낙찰됐다. 낙찰총액은 약 10억원으로 천경자 화백에 이어 21번째로 많다.
최 작가는 세간의 편견에도 NFT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전 세계 시장에 퍼져나갔으면 좋겠다는 뜻이다”라며 “NFT를 통한 예술품 거래가 활성화되면 기존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최 작가와 일문일답.
―NFT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무엇인가.
“왜 한국에는 쿠사마 야요이나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세계적인 작가가 잘 나오지 않을까 고민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작가의 위상이 낮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다. 조각투자가 유행한다는데, 하필 보면 다 해외 작가 작품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둔다면 해외 금융사도 한국 작가에 관심을 가질 기회가 생길 것으로 생각했다. 해외는 데미안 허스트와 같은 유명 작가들이 디지털아트 등을 먼저 시작했다. 한국에도 긍정적 선례를 남기고 싶었다.”
―한국 작가의 세계 진출에 NFT가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지금껏 작가를 알릴 수 있는 수단은 아트페어와 갤러리, 옥션 등 2차 거래를 통해서였다. 해외로 진출하려면 해외 갤러리에 직접 작품을 들고 가서 보여줘야 하는데 작가 개인이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지금은 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전 세계로 작가 이름과 작품이 거론되고 있다. 새로운 형식의 NFT 거래가 활성화되면 또 다른 채널이 생기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해외 금융회사·거래소와 연계해 한국 작가의 작품을 세계 시장에 유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부분이 새로운 형식이라는 것인가.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했다. 기존 조각투자는 예술품 보관과 증권의 발행·유통을 모두 조각투자 회사가 한다. 회사가 파산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대형 금융기관인 하나은행이 작품 보관을 책임지도록 했다. NFT에 대한 신뢰성은 두나무(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가 책임진다. 두 회사가 파산해도 작품은 신탁 재산이기 때문에 안전하다. 특히 NFT가 판매돼도 실물 작품은 계속 보존된다. 해외는 NFT를 판매하면 작품을 아예 불에 태워 NFT가 ‘오리지널’이 되도록 했다. 실물 작품에 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시각을 존중했다.”
―예술적 가치가 담겼다는 실물 작품이 정작 은행에만 맡겨져 있다면, 감상을 통해 영감을 받는 예술의 기능은 무시되는 것 아닌가.
“프로젝트 초기에 그걸 우려했다. 그런데 하나은행이 작품을 개방형 수장고에서 보관해 일반 대중이 언제든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은행이 갤러리를 운영하는 개념이다. 작가 입장에서는 그게 더 재미있는 거다.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은 고가의 미술품을 취급해 수익도 올리고, 관련 부서 규모도 대단하다고 들었다. 국내 금융사들도 미술품을 다뤄줘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게 가능해지면 작가들에겐 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NFT 보유자가 실물 작품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하면 기존과 달라지는 건 없지 않나.
“NFT 보유자는 원할 때 언제든지 작품을 배달받아 직접 가지고 있을 수 있고, 공개하기 싫다면 비공개 수장고에 보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공개를 원할 것이다. 예술품은 대중이 많이 즐길수록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전 세계 사람이 루브르 박물관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다.”
―고가의 미술품이 탈세로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NFT로 손쉽게 미술품을 사고팔게 되면 문제가 커질 가능성은 없나.
“자금 세탁이니 탈세니 모두 가능성이 없다. 오히려 미술품 거래를 더 투명하게 만든다고 보고 있다. NFT가 거래될 때마다 블록체인에 구매자·판매자는 물론 거래 일시와 가격이 기록되고, 이를 누구나 손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NFT로 인해 미술품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반 대중은 갤러리 문턱을 넘어가기 어렵다. 갤러리에 들어가도 가격은 나와있지 않다. 미술품을 구매해도 내가 제대로 된 가격에 산 것인지 모른다. NFT를 통해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작품이 몇 차례에 걸쳐 각각 얼마에 팔렸는지 추이를 볼 수 있다면 신뢰하고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목표나 바라는 점이 있나.
“고가의 미술품을 소유한 사람은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한다. 모든 사람에게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미술품에 대한 소유나 투자는 누군가가 하되, 그 미술품은 미술관에 여전히 전시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달항아리 그림이 NFT로 거래되지만, 누구나 하나은행 개방형 수장고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NFT를 계기로 대중들이 미술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면 기존 미술 시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최영욱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 졸업 ▲홍익대 미술대학원 졸업 ▲2022년 카르마(더현대, 한국) 등 국내·외 개인전 42회 개최 ▲2022년 한국 아트 페스티벌(헤이그 쿤스트 뮤지엄, 네덜란드) 등 국내·외 그룹전 66회 개최 ▲2022년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BAMA(벡스코, 한국) 등 국내·외 아트페어 40회 참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내·외 26곳 기관서 작품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