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을 뚫었던 비트코인이 약세를 이어가며 9000만원대 초반까지 내려왔다. 최근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서 대규모 자금이 유출된 데다, 차익 실현을 위한 매도 물량까지 늘면서 조정을 받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0일 오후 3시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은 전날보다 1.3% 내린 914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비트코인은 이날 오후 2시를 넘어서면서 한때 가격이 8980만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지난 13일 1억400만원까지 오른 후 연일 약세를 보이며 한 주 만에 고점 대비 11.3% 하락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비슷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서 비트코인은 전날보다 4.5% 하락한 6만1800달러에 거래 중이다. 지난 14일 7만300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이후 1주일 만에 약 15% 내린 수치다.
◇ 그레이스케일 ETF서 대규모 자금 유출…美 과세 계획도 악재로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약세로 돌아선 것은 비트코인 현물 ETF 계좌에서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18일(현지시각) 미국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신탁(GBTC) 계좌에서 6억4250만달러(약 8600억원)의 자금이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레이스케일은 지난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를 승인받은 11곳의 운용사 중 하나다. 블랙록과 피델리티 등 다른 운용사와 달리 그레이스케일은 10년 간 기관이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는 신탁 상품을 운용하다 SEC의 승인을 받아 이를 비트코인 현물 ETF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오랜 기간 신탁에 자금을 넣었던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에 나서면서 거액의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GBTC에서는 1월에도 차익을 얻으려는 투자자들의 매도로 대규모 자금이 유출된 바 있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직후 업비트에서 6000만원을 넘겼던 비트코인 가격은 5500만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3월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면서, 다시 차익 실현 매도로 자금이 나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지난 2월부터 한 달여간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가상자산 시장의 상당수 ‘고래(거액 투자자)’들도 코인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가상자산에 세금을 매기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점도 최근 시장이 얼어붙은 이유로 꼽힌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3일 내년 예산안에 가상자산 채굴에 쓰이는 전력에 최고 30%의 소비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포함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어 실제로 가상자산 채굴 과세안이 실현될지 여부는 미지수지만, 시장 전체적으로 불확실성이 커져 투자 심리가 냉각되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美 금리 인하 늦춰지면 조정 길어질 수도
앞으로 비트코인 가격의 향방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여전히 그레이스케일을 제외하고 다른 비트코인 현물 ETF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가격이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여부 등이 불확실해 조정이 길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상자산 데이터 분석업체인 크립토퀀트의 주기영 대표는 19일 자신의 X(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비트코인 가격이 단기 과열에 따른 조정을 받고 있지만, 아직 순환 고점에 이르지는 않은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는 “개인 투자자들도 아직 시장에 많이 들어오지 않았다”면서 “비트코인 현물 ETF 계좌의 자금 유입 상황도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가상자산 전문 매체인 코인데스크는 “최근 비트코인 가격 하락은 예상치를 웃도는 물가 지표로 인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현재의 고금리 상황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보일 경우 조정이 길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연준의 이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는 현지 시각으로 20일 발표될 예정이다. 미국 CNBC는 당초 금융 시장에서 연준이 올해 세 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최근 고물가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두 차례만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