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18일부터 판매되기 시작한 최영욱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 작품 '‘karma 2024 1-42’ 모습. 이더리움 43개로 구매할 수 있다. /업비트 제공

조선시대 도자기 ‘달항아리’를 핵심 소재로 삼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최영욱 작가가 18일 대체불가토큰(NFT) 판매를 시작했다. 2억2500만원의 가격표가 붙은 NFT를 이더리움으로 구매하면, 최 작가의 작품을 온전히 소유할 수 있다. 하나은행이 실물 작품을 보관하고, NFT 발행량이 1개라는 점에서 기존 조각투자와는 다른 구조다. 최 작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미술품 거래시장이 투명해지고, 국내 작가들이 해외로 진출할 계기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상자산업계 등에 따르면, 최 작가는 하나은행과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함께 달항아리 그림 karma 2024 1-42의 NFT를 이날 낮 12시부터 판매했다. 가격은 43이더리움으로 이날 오전 기준 약 2억2500만원이다. 구매할 수 있는 NFT는 1개라 낙찰자가 나오면 판매는 곧바로 종료된다.

◇ “안전성·편리성·투자성 모두 고려했다”

지금껏 시도된 미술품 NFT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NFT였다. 작품을 NFT로 발행한 다음 원본을 불로 태우거나 찢는 경우가 많았다. NFT를 통해서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NFT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영국의 현대미술 작가 데미안 허스트는 자신의 작품 ‘경향’에 대한 NFT를 1만개 발행한 뒤 원본 그림을 직접 불로 태워 없앴다.

반면 최 작가의 프로젝트에서 NFT는 예술적 가치가 없다. 예술품을 손쉽고 투명하게 거래할 수 있는 도구 역할만 한다. 최 작가는 실물 작품을 하나은행이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고, 작품의 소유권이 담긴 NFT 1개만 판매·거래되도록 했다. NFT 보유자 1명이 작품을 독점 소유하는 것이다. 보유자가 NFT를 다른 사람에게 판매해도 소유권만 넘어가고 달항아리 그림은 여전히 수장고에 있다. NFT를 거래하는 것만으로 예술품을 편리하게 사고팔 수 있는 것이다. 다만 보유자가 원하면 언제든 실물 작품을 배달받아 직접 보관할 수도 있다.

특히 실물 작품은 신탁 형태로 보관되기 때문에 보관자인 은행이 파산해도 소유권을 뺏길 일이 없다. 더구나 NFT는 복제가 불가능해 거래 과정에서 진품 확인 절차를 생략할 수 있고, 모든 거래 이력이 블록체인에 저장되기 때문에 탈세도 불가능하다.

최영욱 작가가 자신의 달항아리 작품 앞에 앉아있다. /업비트 제공

이번 프로젝트는 하나의 작품을 여러 명이 공동 소유하는 조각투자와도 다르다. 조각투자는 다른 소유자의 동의 없이 만기 전 미술품을 매각할 수 없다. 예술품 보관은 물론 증권 발행·유통까지 조각투자 업체로 일원화되어 있어 업체가 파산하면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위험성도 있다. 반면 최 작가의 NFT는 보유자가 1명뿐이어서 보유자가 원하면 언제든지 판매할 수 있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최 작가의 에이전시 어라운즈의 이창민 대표는 “기존 미술시장의 폐쇄적인 부분을 기술적으로 투명화하고자 하는 일의 첫 시작이다”라며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블록체인 시스템을 활용해 시장에 혁신을 만들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했다”라고 말했다.

◇ “국내 작가 주목 많이 받았으면”

NFT를 발행한 최 작가는 ‘빌 게이츠가 선택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지난 2010년 12월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스코프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출품된 최 작가의 달항아리 그림을 구매했다. 달항아리는 알랭 드 보통이 영국 박물관에서 실물을 본 뒤 자신의 2019년 저서 ‘영혼의 미술관’에서 “겸허의 미덕에 대한 최상의 오마주”라고 했을 정도로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

최 작가는 국내 경매시장에서 항상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인기 작가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최 작가의 작품 57점 중 51점이 경매에서 낙찰됐다. 낙찰총액은 약 10억원으로 천경자 화백에 이어 21번째로 많다. 지난해 10월에는 영국 런던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오는 5월에는 미국 뉴욕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영국 런던 아우터넷(Outernet)에서 열린 디지털 전시에 최영욱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어라운즈 제공

이미 국내·외 인지도가 충분한 최 작가가 NFT 발행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최 작가는 지난 14일 경기 파주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해외 금융회사와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를 통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이 전 세계 시장에 퍼져나갔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최 작가는 “한국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는 게 너무나 힘든데, NFT 등을 통해 한번 노출이 되면 큰 갤러리 등에서 계약 제의도 올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외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며 “NFT를 통한 거래가 활성화되면 또 다른 채널이 생기는 것이어서 기존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