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가 올해부터 코인 투자자의 입출금 한도에 제한을 두는 공통 지침을 마련한 가운데, 케이뱅크가 지난 5일부터 홀로 기준을 완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서울 을지로 케이뱅크 사옥 전경. /케이뱅크 제공

케이뱅크가 최근 가상자산 거래를 위한 입출금 계좌의 투자 한도 상향 기준을 완화했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은행들은 올해부터 투자자들이 첫 입금을 한 후 1개월이 지나야 한 번에 1억원, 하루 5억원까지 투자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마련했는데, 케이뱅크만 이달부터 제한 기간을 3일로 단축한 것이다.

19일 가상자산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지난 5일부터 업비트에 실명계좌를 개설하고 최초 입금일부터 사흘 경과, 가상자산 매수 금액 300만원 이상의 조건을 충족할 경우 한도 계좌를 정상 계좌로 전환할 수 있도록 변경된 지침을 적용하고 있다.

한도 계좌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에 한 번에 500만원까지만 입금을 할 수 있다. 하루 최대 입금액도 500만원으로 제한된다. 반면 정상 계좌에서는 한 번에 1억원, 하루 최대 5억원까지 입금이 가능하다. 출금 역시 한도 계좌는 한 번에 5000만원, 하루 최대 2억원으로 제한돼 있지만, 정상 계좌로 전환될 경우 한 번에 1억원, 하루 최대 5억원으로 한도가 대폭 늘어난다.

앞서 지난해 11월 은행연합회는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가상자산 실명계정 운영지침’을 마련해 올해부터 시행해 왔다. 변동성이 높은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를 신중히 하도록 유도하고, 자금 세탁 위험 등을 방지하기 위해 한도 계좌와 정상 계좌를 나눠 입출금 제한을 둔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1일부터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케이뱅크와 NH농협은행(빗썸), 신한은행(코빗), 카카오뱅크(코인원), 전북은행(고팍스) 등은 동일한 기준의 입출금 한도 지침을 운영해 왔다. 그런데 케이뱅크가 정상 계좌 전환에 필요한 기간을 대폭 줄인 것이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국내 가상자산 투자 규모는 빠르게 늘고 있다. 가상자산에 거액을 넣으려는 투자자들은 케이뱅크가 실명계좌를 제공하는 국내 1위 거래 플랫폼 업비트로 몰릴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업비트와 제휴를 맺고 있는 케이뱅크의 수수료 수익도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상자산 거래 통계 플랫폼인 코인게코에 따르면 지난 17일 기준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업비트의 점유율은 81.7%에 달했다. 수수료 무료 정책을 시행했던 올해 초 30%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업비트를 위협했던 빗썸은 16.3%로 줄었다. 코인원은 1.6%에 그쳤고, 코빗과 고팍스는 1%에도 못 미치는 점유율을 기록했다.

최근 비트코인 가격이 1억원을 돌파하는 등 가상자산 시장이 달아오르면서 신규 투자자들과 거래량도 빠르게 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에 비트코인 시세가 나오는 모습. /뉴스1

금융 시장에서는 최근 상장을 추진 중인 케이뱅크가 올해 수익을 크게 늘리기 위해 입출금 한도 상향 기한을 단축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반도체 설계(팹리스) 업체인 파두의 ‘뻥튀기 상장 사태’ 이후 기업공개(IPO)에서 실적 개선 여부에 대한 검증도 한층 까다로워진 상태다.

케이뱅크는 앞서 지난 2022년 6월 상장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케이뱅크는 그해 9월 상장예비심사까지 통과했지만, 이후 국내 증시가 침체돼 기대한 만큼 몸값을 평가 받기 어려워지자 결국 상장을 포기했다. 2022년 5월 테라·루나 폭락 사태에 이어 11월 세계 3대 거래소였던 FTX가 파산한 점도 케이뱅크의 상장 철회에 영향을 미쳤다. 가상자산 시장이 혹한기를 맞으면서, 업비트를 통한 수수료 수익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가상자산 가격이 크게 오르고, 신규 투자자들이 늘어나면서 케이뱅크의 상장에도 다시 ‘파란 불’이 켜졌다. 최근 입출금 한도 상향을 위한 조건을 완화한 것도 가상자산 시장의 열기가 뜨거울 때 수수료 수익을 최대한 얻으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상자산 시장이 크게 조정을 받을 경우 업비트를 통해 코인에 거액을 투자한 사람은 큰 손실을 볼 가능성이 크다”면서 “케이뱅크 역시 위험 투자를 조장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