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가상자산이 별다른 호재 없이 하루 만에 두 자릿수의 상승률을 보이며 급등하는 사례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최근 가상자산 시장이 과열되고 코인 투자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면서, 이들을 노린 작전 세력이 시세 조종을 시도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지난 13일 국내 최대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에서 ‘웨이브’ 코인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날 오전까지 5000원선에 거래됐던 웨이브는 낮 12시가 지나면서 갑자기 가격이 뛰기 시작했고, 오후 3시가 되자 6640원까지 치솟았다. 단 세 시간 만에 가격이 30% 넘게 급등한 것이다.
웨이브는 14일 오전에도 한 시간 만에 가격이 6300원에서 7200원으로 치솟았다가, 오후 들어 다시 6500원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웨이브는 지난 2016년 러시아에서 발행된 가상화폐다. 업비트에 게시된 백서에 따르면 이 코인은 러시아 중앙 예탁결제기관의 가상자산 지원 플랫폼 개발에 참여하고, 버거킹 등의 기업과 제휴를 맺고 있다. 러시아산(産) 코인이라는 점 외에는 다른 가상자산과 비교해 별다른 특징을 찾아보기 어렵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도 웨이브의 가격이 갑자기 치솟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는 의견이 많다.
최근 하루 만에 가격이 20% 넘게 급등한 코인은 웨이브뿐이 아니다. 지난 10일에는 업비트에서 ‘스페이스아이디’라는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이 1200원대 초반에서 1900원까지 치솟으며 60% 넘는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어 12일에는 ‘하이파이’ 코인이 45% 넘게 급등했다.
국내 2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빗썸에서도 지난 13일 ‘프론티어’ 코인이 1300원에서 몇 시간 만에 2000원을 넘어서며 60% 넘는 상승률을 보였다. 프론티어는 다음 날 오전 1570원까지 가격이 꺾였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들은 하루 만에 가격이 급등하는 일부 코인의 경우 시가총액 규모가 작고, 주로 국내 시장에서 많이 거래가 되는 특징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한정된 시장에서 적은 거래 금액으로 가격이 크게 오르내릴 수 있어, 시세 조종을 노리는 작전 세력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코인게코에 따르면 웨이브의 14일 기준 시가총액은 5687억원을 기록했다. 시총 규모가 각각 1858조원과 617조원에 이르는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잡(雜)코인’ 중 하나로 분류된다. 이렇다 할 기능 없이 단순히 재미로 만들어지는 ‘도지코인’조차도 시총 규모가 34조원에 이른다.
다른 이상 급등 코인들 역시 대부분 시총 규모가 미미한 수준이었다. 스페이스아이디의의 시총은 9879억원이었고, 지난 9일 57% 뛰었던 아이큐는 3645억원이었다. 하이파이의 시총은 고작 1770억원에 불과했다.
금융 시장에서도 국내에서 주로 거래되거나 발행되는 코인들이 특히 시세 조종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국내에서 주로 거래되는 ‘김치코인’ 10개 중 9개에서 가격이 급등했다가 떨어지는 ‘펌프앤덤프’로 추정되는 사례가 나타났다고 전했다.
보고서는 “작전세력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특정 코인의 시세 조종을 모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유동성이 낮고 시총 규모가 작은 가상자산일수록 시세 조종의 표적이 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과열되고 새롭게 코인 투자에 나서는 사람이 늘수록 작전세력에는 좋은 먹잇감이 생기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법이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라, 그전까지는 여러 부정행위가 시도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