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배모(57)씨는 7년 만에 빗썸 애플리케이션(앱)에 로그인했다. 그는 2017년 500만원을 투자해 이더리움과 리플 등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을 산 후 지금껏 거래 앱을 열어보지 않았다. 최근 가상자산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자, 배씨는 잊었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지원센터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코인에 더 많은 돈을 넣을지 고민하고 있다”면서 “일단 언제든 바로 코인을 살 수 있도록 빗썸 계정부터 살렸다”고 말했다.
국내 2위 가상자산 거래소 플랫폼인 빗썸의 고객지원센터는 거래 앱 이용 중 도움이 필요한 고객에게 은행 창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지난 8일 오후 이곳에는 배씨처럼 오랜만에 거래소 계정을 복구하려는 투자자들이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뒤에 놓인 200인치 대형 전광판에는 각종 가상자산의 상승 흐름이 표출되고 있었다.
최근 국내에서 코인 투자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여러 가상자산 가격이 동반 급등하면서, 한동안 시장을 떠났던 개미(개인 투자자)들이 돌아오고 있다. 지난 2017년과 2021년처럼 이번에도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고, 국내 비트코인 하루 거래량은 1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 일주일간 코인 거래량 80조원 육박
11일 가상자산 시장 분석 업체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국내 5대 원화마켓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의 가상자산 거래량은 588억달러(약 78조원)를 기록했다. 1주일 만에 일찌감치 2020년 월간 평균 거래액(189억달러)을 넘어섰다. 지난해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12월(1089억달러)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국내에서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가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개인들의 코인 투자 규모가 이달 들어 급속도로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최모(29)씨도 한동안 관심을 끊었던 코인 투자를 최근 다시 시작했다. 지난 2021년 말 손실을 보고 비트코인과 위믹스 등을 모두 팔았던 최씨는 2년이 지난 지난달 말 코인을 샀다고 했다.
그는 “곧 비트코인 반감기가 도래해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사를 접하고 투자를 재개하기로 결심했다”면서 “우선 대표 가상자산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소액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가격이 떨어지면 추가로 사들일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최씨처럼 많은 개인 투자자들은 최근 주로 비트코인을 사들이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 시가총액 1위로 가장 믿을 만한 데다, 지난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해 제도권 시장으로 편입됐기 때문이다.
지난 5일 국내 1위 가상자산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의 거래량은 11억2978만달러(약 1조4600억원)을 기록했다. 업비트에서 하루 비트코인 거래량이 10억달러를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트코인 지난 9일 7만달러를 찍으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 5일 6만9000달러를 뚫으며 2년 4개월 만에 역대 최고치 기록을 갈아치운지 나흘 만이다. 이전 기록은 2021년 11월 6만8990달러였다.
◇ ‘대장주’ 비트코인 따라 알트코인 거래도 급증
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인 알트코인의 거래도 늘고 있다. 비트코인보다 가격은 낮고 등락 폭이 커 단시간에 큰 수익을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소액 투자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박별 크립토퀀트 연구원은 “큰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수익을 얻으려는 투자자들이 많다”면서 “거래소들 역시 다양한 알트코인을 상장하고 마케팅을 진행해 이 같은 투자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알트코인에 관심을 두는 투자자들은 주로 텔레그램 코인 단체방에서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다. 코인 관련 텔레그램 정보방은 ‘방장’이라 불리는 채널 관리자가 코인 관련 소식과 함께 코멘트를 남기면 구독자들이 그 대화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가상자산 분석가로 이름을 알린 변창호씨가 운영하는 ‘변창호 코인사관학교’를 비롯해 텔레그램 상에는 수만명 구독자를 보유한 정보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구독자 1만명을 보유한 한 텔레그램방의 방장은 최근 ‘급등장에서도 ‘김치코인(국내에서만 상장된 코인)’ 가격이 오르지 못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공유했다. 1200여명의 구독자들이 이 메시지를 봤고, 일부 구독자는 욕설과 함께 ‘내 돈’이라고 외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다른 구독자는 ‘오히려 김치코인을 살 때가 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코인 열풍은 오프라인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었다. 올해 들어 2월까지 국내에서는 ‘챗GPT의 아버지’라 불리는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이 만든 월드코인이 큰 관심을 끌었다. 월드코인 개발사에 홍채 정보를 제공하면 1년에 90만원어치의 코인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 입소문을 타자, 일반인들이 앞다퉈 월드코인을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홍채 정보 등록 기기가 설치된 서울의 모 카페에서는 점심시간마다 홍채를 인증하고 월드코인을 받으려는 이들이 긴 줄을 서기도 했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타이거리서치의 윤승식 연구원은 “국내에서는 비트코인이 오르면 알트코인 거래량도 덩달아 증가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앞으로 더 많은 신규 투자 자금이 알트코인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업비트에서 비트코인 하루 거래량이 11억달러를 돌파했던 이달 5일, 이더리움을 제외한 180여종의 알트코인 하루 거래량은 106억달러(약 14조800억원)에 달했다.
◇ “호재 많다” vs “혁신 기술 있어야”
다만 올해 코인 투자 열기가 계속 뜨겁게 유지될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박별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이후 다양한 기관 투자자들의 참여가 증가했다”면서 “상반기에 비트코인 반감기와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 결정 등 이벤트가 발생하면 투자자들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윤승식 연구원은 “과거의 코인 시장 호황을 대체불가토큰(NFT) 등 새로운 기술이 주도했다면, 이번 호황은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과 같은 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이끌었다”면서 “과거처럼 시장을 이끌 혁신 기술이 등장하지 않을 경우 투자 열기가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