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예금자 보호 한도를 현행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리겠다는 총선 공약을 발표하며 지난해 10월 '현행 유지'로 일단락 됐던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다. 금융 당국은 이미 매듭지은 논의가 4개월 만에 다시 도마 위에 오르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당장 논의를 재개하기 보다 총선 이후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면 다시 검토에 착수하겠다는 입장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는 예금자 보호 한도와 관련해 총선 이후 시장 상황과 찬·반 논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도 개선 검토에 착수할 계획이다. 현재 진행 중인 별도의 논의는 없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 조정 여부와 관련해 진행 중인 논의는 현재까지 없다"고 했다.
예금자 보호 제도는 금융회사가 파산하거나 영업을 중단해 고객이 맡긴 돈을 돌려주지 못하게 됐을 때 예보가 대신 지급하는 제도다. 원금과 이자를 합쳐 한 금융회사당 1인 5000만원까지 보호한다. 금융위와 예보는 2022년 3월 민관 합동 예금자 보호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린 후 업권별 논의와 외부 연구용역을 거쳐 현행 유지로 최종 결론을 냈다. 금융위는 지난해 10월 이런 의견을 담은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2년여에 걸쳐 마무리된 논의는 정치권발(發)로 재점화됐다. 국민의힘은 총선 공약으로 '예금자 보호 한도 1억원 상향'을 내걸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3월 예금자 보호 한도를 상향하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금융 당국은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예금자 보호 한도는 예금자보호법 시행령을 따르는데, 국회의 의사 결정 없이 국무회의 의결로 개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찬반론이 뚜렷한 사안인 만큼 최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 한도 상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예금자 보호 한도 상향을 주장하는 측은 한도가 해외 주요국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미국은 1인당 25만달러(약 3억2575만원), 영국은 8만5000파운드(약 1억4100만원), 일본은 1000만엔(약 9083만원)까지 보호하고 있는데, 이와 비교해 5000만원은 적다는 것이다. 또 국내 경제 규모에 걸맞게 예금자보호한도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제2금융권으로의 자금 쏠림, 예금보험료 인상에 따른 소비자 부담 전가 등이 우려된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금융 당국이 현행 유지를 결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금융위가 공개한 외부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예금자보호한도가 1억원으로 상향될 경우 은행에서 저축은행으로 자금이 이동해 저축은행 예금이 16∼25% 증가할 것으로 추산됐다. 예금자보호한도를 늘리면 은행보다 금리를 많이 주는 저축은행으로 예금이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금융사로부터 걷는 예금보험료를 올리면 이는 대출금리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금융회사별 예금자 보호 한도 차등 상향 등의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달 2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모든 업권의 예금자 보호 한도를 동일한 수준으로 상향하는 것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며 "은행의 보호 한도는 상향하되, 저축은행·상호금융 등의 한도는 유지하는 게 합리적이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