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오는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관련 공약을 발표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 국민의힘은 이달 안에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허용 등 여러 가상자산 규제 완화 공약을 내놓을 예정이었던 터라, 뜻을 접은 배경을 두고 가상자산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8일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최근 가상자산을 정책 우선순위에서 제외했다. 국민의힘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의원 등이 주도해 가상자산 공약을 만들어 지난주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현재는 이를 무기한 연기한 상태다.
국민의힘 상황에 정통한 관계자는 “지도부가 추가 공약 발표 대신 지역구 공천과 비례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 들어갈 인사를 선정하는 작업 등에 집중하고 있다”면서 “3월부터는 각 지역구에서 선거 운동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남은 기간에 가상자산 공약을 발표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전날 내놓은 기후 관련 공약이 마지막 공약 발표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최근까지 여야가 가상자산 관련 공약을 경쟁적으로 발표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1일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주로 담은 총선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계획을 바꿔 가상자산 공약을 발표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정부, 금융 당국과의 충분한 정책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도부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이 준비했던 공약에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발행과 매매를 허용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여전히 가상자산의 투자 위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한 상황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10일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지만, 금융위는 자본시장법에서 규정한 기초자산에 가상자산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지금껏 이 상품에 대한 투자와 발행을 금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를 2년간 유예하고,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그러나 이 역시 관련 부처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고, 특히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의 경우 중대한 손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돼 공약으로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적으로 가상자산과 관련해 부적절한 행위가 없었는지 여부를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점도 국민의힘이 가상자산 공약 발표를 미루는데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정치권은 김남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코인 대량 보유·매매 파문으로 몸살을 겪었다. 여야는 이후 현역 의원의 가상자산 보유 내역을 공개하는데 합의했지만, 후보자나 의원실 관계자 등은 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지도부가 섣불리 규제 완화 공약을 내놨다가 내부에서 코인과 관련해 석연치 않은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가상자산 공약 발표를 준비하면서 내부 관계자들 가운데 가상자산과 관련한 부정행위나 의혹이 없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미 발표한 공약과 큰 틀에서 내용이 중복돼 ‘신선도’가 사라진 점도 국민의힘이 사실상 공약 발표를 접은 이유로 꼽힌다. 민주당이 지난 21일 발표한 ‘디지털자산 제도화 공약’에도 비트코인 현물 ETF의 허용 추진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됐다. 가상자산 매매수익에 대한 공제 한도를 25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늘리겠다는 내용도 과세를 유예하겠다는 국민의힘 공약과 방향이 비슷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 발표 후 상당히 시간이 지나 국민의힘 지도부가 비슷한 공약으로는 관심을 끌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 “가상자산 관련 내용은 추가 검토를 거친 후 다음 달 중순에 내놓을 공약집에나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가상자산 공약 발표가 사실상 무산되면서 이번 총선에 대한 가상자산업계의 관심도 식었다. 여당의 공약은 정책에 신속하게 반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최근까지 국민의힘이 어떤 공약을 내놓을지를 두고 관심이 컸다. 그러나 국민의힘의 공약 우선순위에서 가상자산이 제외됨에 따라 현재 정부와 금융 당국의 정책이 당분간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야당이 비트코인 현물 ETF 허용 등을 약속해도 여당이 신중한 입장을 보인다면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작을 것”이라며 “블록체인 산업 육성 등도 현재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