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은행·보험 등 금융사는 3월부터 주가연계증권(ELS) 등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투자성 금융상품에 대한 위험등급을 마음대로 산정할 수 없게 된다.

금융사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에 따라 고객에게 투자상품을 권유할 때 상품의 위험등급을 설명해야 하는데, 기존에는 금융사마다 제각기 다른 기준으로 위험등급을 산정해 금융소비자에게 제시했다. 그러다 보니 실제 상품의 위험도가 제대로 등급에 반영되지 못하고, 동일한 상품이더라도 금융사별로 등급이 달리 나오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 당국이 통일된 투자성 금융상품에 대한 위험등급 산정 기준을 마련하면서 투자자는 보다 객관적인 위험등급을 기반으로 상품 투자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3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금융투자협회 등은 최근 투자성 금융상품에 대한 위험등급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의를 마무리하고 3월부터 이를 시행하기로 했다. 앞서 금융 당국은 지난해 1월 위험등급 산정 가이드라인을 연내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실무작업이 늦어지며 시행은 해를 넘겼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최근 당국과 협회 차원에서 위험등급 가이드라인 실행에 따른 실무작업을 마치고 3월부터 이를 적용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금소법은 금융사가 고객에게 투자성 금융상품의 계약 체결을 권유하거나 자문하는 경우 금융소비자가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위험등급을 정해 설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객은 투자 성향에 따라 위험등급에 맞는 상품을 추천받고 가입할 수 있다.

일러스트=정다운

자율규제 형식으로 이번 가이드라인이 시행되면 금융사는 당국이 정하는 위험등급 산정 원칙에 따라 ELS, 변액포험, 특정금전신탁 등 대부분의 투자성 상품에 대해 위험등급을 책정해야 한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금융사는 ▲기초자산의 변동성 ▲신용등급 ▲상품구조의 복잡성 ▲최대 원금손실 가능액 ▲환매‧매매의 용이성 ▲환율의 변동성 등에 따라 위험등급을 1~6등급 체계로 나눈다. 가장 위험한 상품 등급은 1등급이다. 최종 등급은 시장위험과 신용위험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ELS 등 파생결합증권은 최대 원금 손실 가능금액이 20%를 초과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2등급을 부여해야 한다. 여기에 기초자산의 수가 3개를 초과하는 경우, 특수한 형태의 기초자산에 연계돼 상품구조에 대한 투자자의 이해가능성이 낮은 경우 등을 고려해 등급을 1개씩 상향하는 식이다.

위험등급 산정은 금융상품 판매업자가 산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판매사는 제조사가 정한 위험등급을 사용하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제조사의 위험등급을 사용할 수 있다. 판매사와 제조사 간 위험등급이 다를 경우 판매사와 제조사는 등급의 적정성을 협의해야 한다.

위험등급 산정 시점은 상품을 권유·판매하는 시점에 최초로 진행된다. 수시로 판매되거나 환매가 가능한 상품의 경우 결산시점에 맞춰 연 1회마다 위험등급을 재산정해야 한다.

특히 가이드라인은 투자자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위험등급의 의미와 유의사항, 해당 위험등급 산정 사유 등을 함께 설명하도록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판매회사는 금융상품의 위험등급 의미를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표시해야 한다"라며 "위험등급에 관한 설명의무를 이행할 때 위험등급의 의미와 유의사항, 해당 위험등급으로 정해진 사유를 함께 설명해 투자자가 그 위험등급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내부. /금융위원회 제공

금융 당국이 공통된 위험등급 산정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기존에는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위험등급을 산정하면서 금융상품의 실제 위험도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ELS 등 파생결합증권의 경우 발행사의 신용도, 기초자산, 상품구조 등 다양한 위험요인이 있다. 하지만 금융사는 이러한 요인들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상품 판매에 나섰다. 또, 외화증권에 투자되는 상품의 환율변동 위험도 위험등급에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가이드라인이 적용되면 객관적인 금융상품의 위험도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게 되면 금융소비자 역시 본인이 가입하려는 투자성 금융상품의 위험성을 상세히 이해하고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돼 불완전판매의 요인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험등급 산정 체계에 대한 지적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 다수의 금융사고 이전부터 나온 터라 이번 가이드라인 시행이 다소 늦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객 투자 성향에 따라 위험등급이 높은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건데 위험등급을 금융사가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게 되면 투자 성향 평가가 무의미해지는 것 아니냐"라며 "불완전판매를 방지하기 위해선 고객 투자 성향 평가뿐만 아니라 금융사의 위험등급 산정체계의 객관성 제고도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위험등급 산정체계의 객관성이 제고되면 불완전판매 요인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