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은행권 재원으로 소상공인과 서민을 지원하는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은행들은 이미 약 2조원 규모의 상생금융 지원방안을 시행하고 있는데, 또다시 조(兆) 단위 자금을 토해내는 공약이 나오고 있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13일 금융 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188만명이 은행에 낸 대출 이자 가운데 금리 연 4%를 초과한 부분을 최대 300만원까지 되돌려주기로 했다. 환급 한도는 1인당 최대 300만원이다. 지원금액은 18개 은행을 합산해 최소 2조원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이 부담할 금액만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 정책은 은행권이 지난해 말 발표한 2조원 규모 민생금융 지원방안에 포함된 내용이다.
정부는 여기에 신용도가 낮은 소상공인 1만5000명을 대상으로 연 7% 이상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연 4.5%)·10년 장기 분할 상환 대출로 갈아타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금리를 낮춰주면 은행들은 대출을 실했을 당시 예상했던 금액보다 낮은 이자 수익을 올리게 된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하는 것이다.
국민의힘도 지난달 소상공인 보증공급액을 2배로 늘리고, 예금자보호한도 5000만원을 1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서민·소상공인 새로 희망' 공약을 발표했다. 소상공인 보증공급액과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하면 은행들이 부담해야 할 출연금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국민의힘은 청년층 자산형성과 중장년층 노후 준비를 위해 이자소득세를 면제해 주는 저축 상품인 재형저축도 부활하기로 했다. 재형저축은 1976년 도입돼 1995년 폐지될 때까지 연 10% 이상의 고금리에 비과세 혜택도 주면서 인기를 끌었다. 은행권에서는 벌써 역마진을 우려하고 있다. 일반 정기예금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팔수록 손해'라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2013년 재형저축이 재출시됐을 때도 역마진 우려가 있었고 금리를 낮게 책정하니 인기가 없었다"며 "자금을 7년 이상 오래 묵혀두는 상품 특성상 요즘 트렌드와도 맞지 않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코로나19 시기의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출 이자를 대폭 탕감해 주는 정책을 총선 공약으로 추진키로 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인 이용빈 의원은 지난 7일 ▲코로나19 시기 대출이자 전면 탕감 ▲코로나19 시기 대출금 만기연장 ▲연 2% 이내 고정금리 대출시행 등을 '3대 긴급민생과제'로 선정하고 총선 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추진하는 이자 환급 정책을 넘어 아예 이자를 모두 없애주겠다는 것이다.
여야 총선 공약은 모두 은행권이 비용을 부담하거나 은행 수익성을 악화하는 정책이다. 실제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3.6% 감소한 14조9682억원을 기록했다. 1조6000억원에 달하는 민생금융 지원방안 비용을 4분기에 반영하면서 순이익이 줄어든 것이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인 수익 감소가 예상된다. 국내 은행의 건전성은 최근 부실채권 비율 및 연체율 상승으로 악화하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에 따라 한계 차주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충당금 적립 규모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 당국은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스(PF) 부실 등에 대비해 충당금을 충분히 쌓으라고 은행권에 요구하고 있다.
올해 기준금리 인하로 대출금리 하향세가 본격화하면 이자이익 축소는 불가피하다. 은행권에서는 여야의 공약이 시행되면 결국 피해는 일반 예금자나 정상적으로 이자를 갚아나가는 소비자가 지게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만큼 예금자에게 돌아갈 이자가 줄고 대출자에게 금리를 감면해 줄 여력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해야 할 자금이 포퓰리즘 정책에 쓰여 은행의 기초 체력을 갉아먹는다는 지적도 금융권에서 나온다.
은행권 한 고위 관계자는 "매번 선거 때마다 금융권이 표적이 되곤 하지만, 이번 총선은 더 심화된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