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사는 박모(31)씨는 예전 직장 동료에게 1억5000만원을 사기당했다. 지인 A씨는 좋은 코인 투자 정보가 있다며 공동 투자를 하자고 했다. 이미 지인들은 이 투자로 30% 이상 수익을 얻었다며 수익금이 입금된 통장도 보여줬다. 박씨는 500만원을 투자해 첫달에 수익금 20만원을 받았다. 투자금을 늘려야 목돈을 벌 수 있다는 A씨의 설득에 결국 대출까지 받아 6000만원을 투자했다. 몇 개월 동안 정상적으로 입금되던 수익금은 5개월이 지나서 들어오지 않았다. A씨는 투자자가 너무 몰려 수익금 배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투자금을 돌려받고 싶다고 하자 조금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후 수익금이 입금됐다 멈추기를 반복했고, A씨의 설득에 박씨는 투자금을 1억원까지 늘렸다. 이후 이 모든 것이 사기고 통장 내역도 조작이란 것을 알게 됐다. 1억원 이외에 자신의 명의로 5000만원의 대출이 추가로 있었다는 점도 뒤늦게 알았다.

청년빈곤의 원인 중 하나로 금융교육 부재가 꼽힌다. 금융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금융문맹’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청년들이 급전이 필요해 사금융 대출을 이용하거나 한탕주의 투자로 빚더미에 앉고 있다. 박씨의 사례처럼 비교적 간단한 수법의 금융 사기에도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금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금융문맹’이 청년빈곤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조기 금융교육은 소득 양극화와도 상관관계가 있어 초·중·고교에서 보편적인 금융공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금융교육 확대에 대한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관련 법이나 제도는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정수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에선 따로 찾아서 듣지 않는 이상 금융교육을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청년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금융교육 마련이 필요하다”며 “특히 졸업을 앞둔 시점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금융교육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 극단적 선택까지 고민하는 청년 빈곤층

재단법인 청년재단이 20~30대 청년세대 약 2000명을 대상으로 한 금융소비 행태 설문조사 결과, 청년세대의 약 60%가 대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빚투’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빚투를 한 청년들은 대부분 주식(50.3%)에 투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밖에 부동산(18.8%), 가상화폐(17.8%), 펀드(11.0%)도 있었다. 개별 투자항목에 대한 이들의 만족도는 주식 31%, 부동산 39%, 가상화폐 23%, 펀드 33%로 대부분 낮았다. 나머지는 모두 빚투 실패를 경험한 것이다.

빚 때문에 미래를 저당잡힌 청년들의 숫자는 매해 늘고 있다. 한국신용정보원이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30대 이하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약 23만12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말 대비 약 1만7000명이 늘었으며 전체 금융채무 불이행자 중 30대 이하 비중은 29.75%에 달했다. 금융채무 불이행자는 대출 이자를 90일 이상 연체한 이들로 금융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되면 금융거래가 중단된다.

결국 이들의 선택은 회생이나 프리워크아웃이다. 진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개인회생 신청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20∼30대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2만5244건으로 집계됐다. 2022년 20∼30대 신청 건수는 4만494건이었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20∼30대 개인회생 신청 건수는 전년보다 10~15%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한 청년 전문 상담가는 “영끌 투자나 빚투로 상담하는 청년들은 금융지식도 취약한 경우가 많다”며 “상담하는 청년 중 대부분 제도권 회생 방안을 몰라 극단적 선택을 생각했다거나 시도했다고 말해 안타깝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모습. /연합뉴스

◇ 입시에 막힌 청소년 금융교육

한국 금융교육은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매번 금융교육을 공교육에 편입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지만, 해당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입시 과목이 늘어나면 수험생의 부담이 그만큼 늘어나고 사교육도 성행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2025년부터 고등학교 선택 과목으로 ‘금융과 경제생활’이라는 금융 과목을 들을 수 있다. 다만 선택과목이라 입시과목 위주 교육 환경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이 대부분이다. 고교 선택 과목은 15명 이상이 선택해야 개설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경제’ 과목도 응시 비율이 1%대에 그치는데, 비(非) 시험 과목인 금융을 선택할 학생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한국 금융교육의 문제는 지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2년마다 ‘금융이해력’을 조사한다. 지난해 3월 발표된 2022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년 전(65.1점) 대비 금융이해력은 소폭 개선됐으나 여전히 연령·소득·학력별 격차가 드러났다.

2022년도 우리나라 성인(18~79세)의 금융이해력 점수는 66.5점으로 조사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62점을 상회하는 결과지만, 금융 선진국으로 볼 수 있는 최소 목표점수(66.7점)에는 미치지 못한다. 세부 내용을 살펴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 있다. 한국은행과 금감원은 ‘금융지식(Financial Knowledge)’, ‘금융행위(Financial Behavior)’, ‘금융태도(Financial Attitude)’ 등을 묶어 금융이해력을 평가한다. 이번 조사에서 이 항목별 점수는 각각 75.5점, 65.8점, 52.4점이었다.

교육 현장에서 금융교육이 실전이 아닌 이론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예컨대, 조사 참석자들은 이자 개념은 알고 있으면서도 복리를 계산하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다. 또 금융상품을 선택할 때 전문가 조언보다 친구·가족·지인의 추천에 의존한다고 답했다. 금융태도의 점수가 낮을수록 미래보다는 현재를, 저축보다는 소비를 선호한다는 의미다. 이 조사에서는 20대가 48.9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 [청년빈곤시대] 글 싣는 순서

① 학자금 대출에 빚투, 결국 불법사채로… ‘빚 수렁’ 벼랑끝 2030

② 출발점 달랐던 두 청년, 10년 후 모습은… 빈곤 대물림 겪는 2030

③ 상위 20% ‘금수저’ 청년 평균 자산 10억 육박… 42%는 “난 빈곤층”

④ 주거 사다리 끊겼다… ‘부모 찬스’ 없으면 평생 월세 신세

⑤ 복지 사각지대 내몰린 2030… 기초생활수급자 5년 새 44% 증가

⑥ 20대 금융이해력 49점… 범죄·사기 노출된 금융문맹 청년층

⑦ “한국 청년은 왜 가난한가요?”… 촘촘한 청년 지원책 갖춘 독일·싱가포르

⑧ “아프니까 청춘인 시대 끝나… 복잡한 청년 문제 맞춤형 정책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