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청년 세대가 빈곤의 늪에 빠지고 있다. 통계청 등의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청년 10명 중 4명은 소득이 중위소득의 50% 미만인 빈곤층에 해당한다. 청년들은 일자리 감소로 취업 기회를 박탈당하고, 양극화 심화로 공정한 경쟁의 기회마저 잃고 있다. 조선비즈는 꺼져가는 청년의 희망을 되살리기 위해 그들이 겪는 빈곤의 삶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일러스트=손민균
“처음 피를 뽑을 때는 무서웠어요. 그런데 당장 써야 할 생활비가 없는 게 더 무섭더라고요.” 대학 졸업 후 2년간 취업 준비를 하는 이강철(가명·27)씨는 지난해 말 한 제약사에서 진행하는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했다. 이씨는 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를 통해 쉽게 생동성 임상시험을 신청할 수 있었다. 병원에 입원한 이씨는 대부분 시간을 공복 상태에서 하루 10번가량 피를 뽑아야 했다. 이씨가 2박 3일간 입원해서 손에 쥔 돈은 160만원이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린 이력서를 보고 연락이 왔어요. 단순 심부름 알바라고 했는데, 그게 범죄인지 전혀 몰랐죠.” 코로나19로 3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정민규(가명·32)씨는 지난해 초 보이스피싱 수거책 피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정씨는 2년 전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는데, 한 업체가 간단한 심부름이라며 정씨에게 연락했다. 이들은 정씨에게 거래처 대금을 회수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간단한 업무에 건당 수입이 30만원이라는 말에 정씨는 업무에 응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정씨의 역할은 보이스피싱 수거책이었다.

최근 위험한 고수익 아르바이트(알바)에 참여하는 청년층이 늘고 있다. 청년세대가 이런 알바에 뛰어든 데는 ‘빈곤의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다. 청년 빈곤의 중심에는 ‘빚의 굴레’가 있다. 고금리, 고물가는 지속되는데 자산이 없는 청년층의 상대적 빈곤은 더욱 심해지고, 자산 형성의 기회조차 잡기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날 청년세대는 빚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세대가 됐다. 대학생 청년은 학비가 없어 학자금 대출을 받고 있다. 자산을 형성하려는 청년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를 해서라도 투자에 나선다. 소득기반이 없는 청년은 불법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 학자금 대출, 생활비 부담에 추가 대출

그래픽=손민균

상당수 청년은 학자금 대출을 시작으로 빚의 굴레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하소연한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한국장학재단 학자금 대출을 이용한 학생 수는 전년보다 1676명 늘어난 41만1093명으로 나타났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을 전체 재학생 수로 나눈 학자금 대출 이용률도 12.9%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학자금 대출은 ‘일반상환 학자금 대출’과 일정 소득이 발생한 후에 상환의무가 발생하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로 나뉘는데, 지난해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은 24만9502명으로 1만2101명(5.1%) 증가했다. 미래 소득을 담보로 빚을 지는 대학생들이 증가한 것이다.

그래픽=정서희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청년들도 증가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한국장학재단이 학자금 대출 가운데 회수 불능으로 처리한 금액은 274억8900만원으로 집계됐다. 회수 불능 금액은 ▲2018년 47억3000만원 ▲2019년 51억4900만원 ▲2020년 82억2900만원 ▲2021년 118억6200만원 ▲2022년 274억8900만원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4년 전보다 약 6배 늘어난 수치다. 또 지난해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인원은 4778명으로 2018년(679명)보다 약 7배 증가했다.

학자금 대출 금리는 지난 2021년부터 1.7%로 묶여 있어 상대적 부담이 낮다. 그러나 최근 기준금리가 상승하면서 다른 대출로 진 이자 부담이 높아진 청년들이 학자금 대출까지 갚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이유로는 개인회생과 파산이 가장 많았다. 지난해 개인회생으로 학자금 대출 상환 면책을 받은 인원은 3454명으로 전체의 72.3%를 차지했다. 파산 면책으로 대출을 갚지 못한 인원은 954명(20.0%)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변제가 끝나면 기록이 보관되지 않는 개인회생과 다르게 개인파산은 면책을 받고 5년간 그 기록이 남는다.

◇ “월급으론 집 못 산다” 빚투에 올인

그래픽=손민균
“학벌도 기술도 없는데, 지금 같은 돈벌이로는 집은 물론 저축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불법도 아니고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솔깃할 수밖에 없었죠.” 현재 물류회사에 다니며 월 200만원을 받는 김기성(가명·34)씨는 한 달에 월세, 공과금, 식비 포함 100만원 가량의 생활비만 지출한다. 나머지 월급은 대출 이자를 갚는다. 문제의 발단은 재작년 코인회사에 다니며 직접 보고 듣던 이야기였다. 단번에 수천, 수억원을 벌었다는 투자자의 이야기에 마음이 혹했다. 그렇게 김씨는 연 17~19%대의 고금리 리볼빙과 카드론 2700만원을 받았지만, 이 돈이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행처럼 번졌던 영끌과 빚투의 어두운 그림자도 청년층에 드리워지고 있다. 이들은 저금리 시대에 주변에서 부동산과 가상화폐 등으로 소위 ‘벼락부자’가 되는 과정을 보고 들으며 ‘벼락거지’를 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섰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금리는 빠르게 올랐고 자산가치는 떨어졌다. 원금과 이자 부담까지 늘며 현재 청년세대는 역대 빚이 가장 많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22년 6월부터 2023년 7월까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및 6대 증권사(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NH투자·키움·메리츠)가 2030세대에게 취급한 빚 규모는 134조원에 육박했다. 특히 청년층은 한 해 동안 주택담보대출(주담대)로 75조4604억원을 빌렸고, 신용대출도 8조4888억원 받았다. 주식 신용거래는 46조890억원, 미수거래 3조7709억원으로 ‘영끌’, ‘빚투’를 위한 부채도 상당했다.

그래픽=정서희

청년층의 빚 상환 능력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30세대의 연체금액은 지난 2022년 3524억원에서 2023년 7월 4940억원으로 6개월 사이 1416억원 증가했다. 청년들은 채무를 갚기 위해 또 다른 대출로 내몰려야만 했다. 지난해 말 30대 이하 다중채무자 수는 142만명으로 대출잔액은 157조원에 달한다. 3개 이상의 금융기관으로부터 빚을 낸 다중채무자는 지난해만 6만5000명 늘었다.

◇ 신용 낮아 불법 대부업에도 손대

최수빈(가명·29·여)씨가 불법 대부업체에 대출 문의를 하고 있다. /최씨 제공
“생활비도 없는데, 원금은 물론 한 달 만에 100만원 가까이 불어난 이자를 갚을 길이 막막해요.” 기초생활수급자로 생계를 이어오던 최수빈(가명·29·여)씨는 최근 불법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렸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사고로 수술비 500만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소득이 없던 김씨는 2금융권에서도 신용대출을 받을 수 없자 불법 대부업체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이자 폭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업체는 500만원을 빌려줄 테니 한 달 뒤 600만원으로 갚아야 한다고 안내했다. 연이율로 환산하면 연 1000%가 넘는 고금리였다.

그나마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청년은 신용도가 높은 경우다. 담보나 신용이 충분하지 않은 청년들은 1금융은 물론 2금융 문턱마저 넘지 못하고 불법 대부업체에 손을 벌렸다가 파산하기도 한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20대 이하의 개인워크아웃 원금 감면 확정자 수는 올해 상반기 4654명으로 상반기 기준 201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8년와 비교하면 두 배가 넘는다. 개인워크아웃 기록이 남아 있는 청년은 낮아진 신용점수로 금융권 대출이 어려워진다.

20대 청년들의 깊어진 빚 수렁은 소액생계비대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소액생계비대출은 대부업조차 이용이 어려워 불법사금융으로 빠지는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정책성 상품으로 최대 100만원 대출 지원을 내준다. 문제는 매월 갚아나가는 이자가 4000~6000원 수준에 불과한데, 이를 갚지 못한 20~30대 비중이 늘고 있다. 지난 9월 기준 20대 이하 소액생계비대출 이자 미납률은 27.4%로, 4명 중 1명은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고 있었다. 30대의 소액생계비대출 이자 미납률도 19.8%로 20대와 30대의 이자 미납률을 합치면 50%에 육박한다.

‘벼랑 끝’에 선 청년은 불법 대부업체의 범죄 표적이 되기도 한다. 돈이 급한 청년층에게 인증 절차를 빌미로 사진과 지인들의 연락처를 받아내고 제때 돈을 갚지 못하면 사진을 음란물과 합성해 지인들에게 뿌리겠다고 협박하는 식이다.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알몸 사진을 요구한 경우도 있다. 살인적인 이자를 받아내면서 가족·지인 등 사회적 관계까지 악용한 것이다. 10대와 20대 등 소액 급전이 필요한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대리입금과 내구재 대출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청년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는 “오늘날 청년 빈곤은 청년층이 노력을 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소득불균형, 자산가치 폭등 등 사회구조적 문제가 크다”며 “실업 안전망이나 사회보장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청년의 생활비, 주거비 부담을 덜어내는 국가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청년빈곤시대] 글 싣는 순서

① 학자금 대출에 빚투, 결국 불법사채로… ‘빚 수렁’ 벼랑끝 2030

② 출발점 달랐던 두 청년, 10년 후 모습은… 빈곤 대물림 겪는 2030

③ 상위 20% ‘금수저’ 청년 평균 자산 10억 육박… 42%는 “난 빈곤층”

④ 주거 사다리 끊겼다… ‘부모 찬스’ 없으면 평생 월세 신세

⑤ 복지 사각지대 내몰린 2030… 기초생활수급자 5년 새 44% 증가

⑥ 20대 금융이해력 49점… 범죄·사기 노출된 금융문맹 청년층

⑦ “한국 청년은 왜 가난한가요?”… 촘촘한 청년 지원책 갖춘 독일·싱가포르

⑧ “아프니까 청춘인 시대 끝나… 복잡한 청년 문제 맞춤형 정책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