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을 10일(현지시각) 승인했다. 사진은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 /블룸버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장을 승인했다. 변동성이 크고, 시세 조작 등 각종 금융 범죄에 악용되는 초고위험 자산으로 인식돼 온 가상자산이 세계 최대 금융 시장인 미국의 인정을 받아 정식으로 제도권 금융 시장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금융 시장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에 따라 기관을 중심으로 대규모 신규 자금이 유입되면서 기초자산인 비트코인은 물론, 전체 가상자산 시장의 시가총액 규모도 크게 늘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일각에서는 올해 가상자산 시총이 현재의 3배에 이르는 5조달러(약 66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만, 가상자산 가격에 대해서는 앞으로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낙관론과 이미 호재가 반영돼 있다는 신중론으로 분석이 엇갈린다.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에 들어옴에 따라 미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에서 안전성과 기능 등을 인정받은 코인으로 투자가 집중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 비트코인에 기관 투자자금 유입… “최대 1000억달러” 주장도

10일(현지시각) 로이터와 CN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SEC는 이날 블랙록과 아크인베스트, 피델리티 등 11곳의 금융사가 제출한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 신청을 승인했다. 해당 상품들은 11일부터 뉴욕 증시에서 거래가 시작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앞으로 비트코인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지금껏 비트코인은 주식 시장이 아닌 가상자산 거래소에서만 매매할 수 있었다. 가상자산은 금융 당국의 관리·감독을 거의 받지 않고, 대다수 국가에서 아직 체계화된 법과 제도도 마련되지 않아 기관의 자금이 투자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금융 당국의 승인을 받은 제도권 금융사의 상품이 돼 증시에서 거래가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사라져 기관이 투자 포트폴리오에 수월하게 비트코인 현물 ETF를 포함시킬 수 있다. 이에 따라 주식이나 원자재 등에 쏠렸던 자금 가운데 일부가 비트코인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진다.

블록체인 분석업체인 체이널리시스의 제프 빌링험 전략기획 총괄은 SEC의 승인 결정 직후 성명을 내고 “비트코인 ETF 승인은 은행 자산 관리, 전문 투자자문사 등 다양한 유형의 기관 투자자들도 가상자산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합법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SC)는 지난 8일 보고서에서 올해 비트코인에 최대 1000억달러(약 132조원)가 유입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NH투자증권도 지난해 10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보수적으로 보면 전 세계 ETF 운용자산(AUM) 중 100억달러가,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금 ETF의 전체 AUM과 맞먹는 900억달러의 자금이 들어올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 코인 ‘옥석 가리기’ 본격화…다음 타자 이더리움에 관심 집중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에 따른 신규 자금 유입은 비단 비트코인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장주’인 비트코인이 제도권 금융 시장으로 들어오고 초고위험 자산으로만 여겨졌던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자들의 경계심이 줄어, 시장의 전체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코빗리서치센터는 ‘2024년 가상자산 시장 전망 보고서’에서 자금 유입과 코인 가격 상승으로 올해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 시총이 4조5000억달러에서 5조달러 수준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말 기준 시총 1조6000억달러와 비교해 최대 3배 수준까지 커진다고 본 것이다.

다만, 모든 가상자산이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비트코인과 같이 오랜 기간 검증되고 기능성을 인정받은 가상자산에는 투자가 집중되지만, 이렇다 할 쓰임새가 없는 이른바 ‘잡코인’은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상장과 거래를 공식 승인한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빗썸 고객센터 전광판에 이더리움 등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뉴스1

비트코인에 이어 현물 ETF 상장이 추진되고 있는 이더리움의 경우 최근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코인 중 하나다. 비트코인은 결제나 거래 관련 시스템 등 화폐의 기능을 수행하지만, 이더리움은 이에 더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계약서와 전자투표 등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확장성까지 제공한다.

이날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결정된 직후 비트코인 가격은 큰 변동이 없었지만, 이더리움 가격은 10% 넘게 급등하기도 했다.

◇ 단기적인 가격 급등 가능성은 작아

다만,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 후 가상자산 가격이 계속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대규모 자금 유입은 분명 호재에 해당되지만, 지난해부터 이미 가격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는 주장도 많다.

실제로 지난해 10월부터 비트코인을 포함한 주요 가상자산 가격은 2개월여 동안 강세를 이어왔다. 국내 원화 거래소에서 3500만원대에 거래됐던 비트코인은 올해 초 6000만원대를 뚫었고, 솔라나와 아발란체 등 일부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자산)은 몇 배가 뛰기도 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소식이 나온 후 대부분의 가상자산은 잠시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차분한 흐름을 되찾고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11일 오전 10시 현재 국내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에서 전날과 큰 변동이 없는 635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에델만파이낸셜서비스의 창립자인 릭 에델만은 이날 CNBC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에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 양쪽에서 엄청난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크지만, 소요되는 기간은 며칠이나 몇 주가 아닌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간에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오를 가능성은 작다고 점친 것이다.

일부 금융사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출시 후 가격에 대해 비관론도 제시했다. 이슈가 모두 가격에 반영돼 있다는 분석과 함께, 대규모 신규 자금 유입도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JP모건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비트코인에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이 들어와 가격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면서 “가상자산 시장 밖의 자금이 아닌, 비트코인 선물 ETF나 채굴업체 주식 등 이미 시장에 투자된 자금이 현물 ETF로 이동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