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보험사들이 단기납 종신보험의 10년 유지 환급률을 기존 120% 수준에서 130% 이상으로 확대했다. 보장성 보험으로 분류되는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에 박차를 가해 계약서비스마진(CSM)을 높여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으로 해석된다. 10년 뒤 대량으로 계약 해지가 발생해 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보험업계는 당장 원수보험료 확보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NH농협생명은 올해 7년납 종신보험의 10년 유지 환급률을 업계 최고인 133%로 확대했다. 월 10만원을 7년 동안 납입한 뒤 3년만 더 유지해 10년을 채워 해지하면 이자 296만원을 합쳐 1187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월 50만원을 납입하면 5660만원을 돌려받는다. 영업 현장에서는 10년 적금으로 따지면 연 이자가 7.8%인 데다 비과세 혜택과 카드 납입도 가능해 고금리 특판 상품보다 유리한 조건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기존 종신보험의 납입기간을 대폭 줄인 상품이다. 통상 종신보험은 20~30년 동안 보험료를 내야 만기가 된다. 만기 전에 보험을 해지하면 돌려받을 수 있는 환급금은 원금의 100% 미만이다. 장기 납입과 원금 회수 불가능에 부담을 느끼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인기가 떨어지면서 서서히 외면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생명보험사들은 납입기간을 5년·7년으로 줄이고 납입기간을 채우면 100%가 넘는 환급률을 보장하는 단기납 종신보험을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5년·7년을 채우기 전 보험을 해지할 경우 환급금을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무해지) 기존 종신보험보다 적게(저해지) 돌려주는 대신 보험료는 기존 종신보험보다 30~50% 저렴하게 책정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은 보장성 보험인 단기납 종신보험이 재테크를 위한 저축성 보험인 것처럼 판매되는 행태를 막겠다며 5년·7년 시점 환급률이 100%를 넘지 못하게 제한했다. 생명보험사들은 5년·7년 대신 10년 시점 환급률을 120% 수준으로 높여 판매해 왔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하더라도 10년 시점 환급률이 130%가 넘는 곳은 사실상 푸본현대생명이 유일했다. 하지만 연말·연초를 기점으로 한화생명과 하나생명이 5년납 종신보험의 10년 시점 환급률을 130%로 확대하며 경쟁에 나섰다. 교보·DB·동양생명은 7년납의 10년 시점 환급률을 130~131%로 높였다. 다만 업계 1위인 삼성생명의 환급률은 여전히 12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생명보험사들이 단기납 종신보험 혜택을 강화한 이유는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으로 새로운 계약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마진을 ‘현재’ 가지로 바꾼 CSM이 중요해졌는데, 보장성 보험인 단기납 종신보험 판매로 CSM 확보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환급률 130%가 보장되는 10년 뒤다. 현재 단기납 종신보험에 가입했던 고객들이 10년 후 대량으로 보험을 해지하면 지급해야 할 보험금이 일시적으로 늘면서 생명보험사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각에선 종신보험의 해지율이 보험 상품 중 가장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종신보험 해지율은 1년 뒤 20%, 2년 뒤 40%, 3년 뒤 50% 수준으로 알려졌다. 3년이 지나면 가입자 절반이 종신보험을 해지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환급금이 줄어 건전성에 악영향을 끼치긴 어렵다는 주장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이 상품을 판매할 때는 부채나 자산운용에 대한 계획도 같이 짜기 때문에 단기납 종신보험이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다”며 “금융 당국이 보기엔 한 상품이 너무 인기를 끌다 보니 주의하라는 시그널을 준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납입기간 20~30년짜리 기존 종신보험의 해지율을 단기납 종신보험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기납 종신보험은 평생 보험을 유지하기보단 계약을 해지해 자산을 불리는 재테크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고객들이 예상을 깨고 10년 동안 계약을 유지한 뒤 대량으로 보험 해지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종신보험 해지율의 예상치와 실제 해지율의 차이인 ‘예실차’가 커지면 보험사 이익은 감소한다. 계약 해지가 대량 발생해 일시에 손실로 잡히면 리스크 관리가 어려워지고 손실까지 발생할 수 있다. 금감원이 5년·7년 단기납 종신보험에 제동을 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10여년 전 상품성이 좋은 실손보험을 대량으로 팔아 현재 손해를 겪고 있는 것처럼 올해 단기납 종신보험이 많이 팔리면 5~10년 뒤 건전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며 “10년 뒤에 나갈 돈보다 당장 원수보험료 등 현금을 최대한 거둬 다른 사업을 진행하는 게 중요하니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