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이 자금난 끝에 결국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금융권 전체의 부실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고객 예금을 받아 금리 장사를 하는 은행 등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는 캐피탈사는 부동산 PF의 사업 비중이 커 막대한 손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부동산 PF 사업의 초기 단계 대출인 브릿지론이다. 고금리로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면서, 올해 상환 예정됐던 브릿지론 중 상당수가 만기를 연장한 상황이다. 내년에는 이런 만기 연장 물량까지 더해지면서 브릿지론 대출 비중이 큰 캐피탈사의 부실 채권 규모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내년까지 만기되는 캐피탈사 브릿지론 12조원
29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캐피탈사의 브릿지론 총액은 11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내년 만기가 예정된 브릿지론은 4조6000억원이다. 그러나 올해 상환 예정이었던 7조1000억원 규모의 브릿지론 중 상당수의 만기가 연기돼 내년 상환 예정인 물량은 이보다 훨씬 늘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PF는 본PF와 브릿지론으로 나뉜다. 자금이 부족한 시행사들은 사업 초반 토지 매입 등을 위해 주로 캐피탈사를 포함한 2금융권에서 고금리로 브릿지론을 통해 돈을 빌린다. 이후 개발 인·허가를 받고 시공사를 선정하면 1금융권 등으로부터 토지 담보 대출로 본PF 자금을 받아 브릿지론을 상환한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일 때는 금리가 높은 브릿지론 대출 수요가 급증해 캐피탈사 등의 이익이 급증한다. 그러나 올해 주택과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 본PF로 넘어가지 못하고 좌초하는 사업장이 늘면서 브릿지론 대출 규모가 큰 금융사의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올해 건설업계와 금융 시장에서는 ‘9월 부동산 PF 위기설’이 돌았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브릿지론 가운데 상당 물량이 8월에 집중돼 있어 9월부터 시행사에 돈을 빌려준 금융사의 부실채권 규모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된 것이다.
당시 금융 당국은 9월 위기설을 차단하는데 안간힘을 썼고, 여러 금융사들도 브릿지론 만기를 3~6개월 연장하는데 합의하면서, 우려했던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상환이 유예된 물량까지 더해 내년 상반기에 브릿지론 만기가 집중되면서 캐피탈사들의 손실이 단기간에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위지원 한신평 금융구조화평가본부 실장은 “올해 하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브릿지론의 23~40%는 이미 상환 유예 후 1년 반이 지나 추가 재연장이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내년 상반기까지 브릿지론 상환이 집중되고, 2025년부터는 본PF의 만기 부담까지 가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1위 신한캐피탈도 PF 절반 이상이 브릿지론
캐피탈사들은 부동산 PF 위기에 가장 취약한 업권으로 꼽힌다. 은행 예금을 받아 이자 장사와 채권 투자 등으로 수익을 얻는 은행, 저축은행 등과 달리 수신 기능이 없어, 지금껏 부동산 PF에 대한 사업 비중을 늘려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캐피탈사들은 취급하는 부동산 PF 가운데 중·후순위 대출 비중이 40%에 달해, 사업이 좌초할 경우 빌려준 돈을 거의 회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캐피탈업계에서 부동산 PF 부실에 따른 위험이 가장 큰 곳으로 거론되는 회사는 OK금융그룹 계열의 OK캐피탈이다. OK캐피탈은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부동산 PF 사업 비중을 빠르게 늘렸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OK캐피탈의 자기자본 대비 브릿지론 비중은 2.4배로 한국투자캐피탈(1.6배), DB캐피탈(1.3배), 키움캐피탈(0.9배), 메리츠캐피탈(0.7배) 등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 OK캐피탈은 총 9건, 합산 금액으로는 196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이 발생했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OK캐피탈보다 신용등급이 높은 우량 캐피탈사 역시 브릿지론 위기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한신평 기준 신용등급 AA-급 캐피탈사로 업계 1위인 신한캐피탈도 부동산 금융 자산의 54%가 브릿지론에 몰려 있다. 3분기 신한캐피탈의 요주의이하여신비율은 10.3%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한 캐피탈 관계자는 “대기업이나 금융지주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캐피탈사, 신용등급이 낮은 중소형 업체들 가운데 상당수가 내년에 극심한 경영난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용평가업계도 최근 일부 캐피탈사들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OK캐피탈의 신용등급을 ‘A-(부정적)’에서 ‘BBB+(안정적)’으로 낮췄다. 또 한기평과 한신평, 나이스신용평가 등은 모두 새마을금고 계열인 M캐피탈의 등급 전망을 ‘A-(긍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떨어뜨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