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인수합병(M&A) 시장에 여러 보험사가 매물로 나왔지만, 단 한 건도 매각이 이뤄지지 못한 채 해를 넘기게 됐다. 회계 기준이 바뀌면서 보험사의 실적에 대한 의문 부호가 켜진 데다, 일부 매물의 경우 회사 규모가 작거나 경영 정상화에 필요한 비용이 커 인수 후보자의 외면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13일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M&A 시장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보험사 매물은 KDB생명과 MG손해보험, ABL생명 등이다. 여기에 롯데손해보험도 최근 매각을 위한 본격적인 실무 작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중국 다자보험그룹이 소유한 동양생명도 잠재 매물로 거론된다.
그러나 지금껏 매각이 성사된 회사는 한 곳도 없다. KDB생명은 하나금융지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실사 과정에서 경영 정상화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돼야 할 것으로 예측돼 매각이 결국 무산됐다. ABL생명 매각 역시 인수를 추진했던 BNK금융그룹이 발을 빼면서 없던 일이 됐다. MG손보의 경우 반년 넘게 시장에서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험업계는 예년에 비해 M&A 시장에 보험사 매물이 많이 출하되면서 M&A가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여러 금융지주사가 연초부터 은행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매물로 나온 보험사들이 어렵지 않게 새 주인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예상과 달리 보험사 M&A 시장이 아무런 성과 없이 해를 넘기게 되자, 금융 시장에서는 최근 보험사의 실적과 성장 전망에 대한 인수 후보자의 의구심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여러 보험사가 올해 상반기까지 눈에 띄는 실적 개선을 이뤘다. 그러나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상품 판매나 투자 등에 따른 것이 아닌, 새 회계 기준인 IFRS17의 도입에 따른 ‘착시 효과’일 뿐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금융 당국이 실적 부풀리기로 활용될 만한 요인을 조정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한 3분기부터 수익이 크게 감소한 보험사도 많았다. 실제로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 등은 “회계 제도 변경으로 인한 보험사의 이익을 그대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금융지주사와 사모펀드(PEF) 등이 거액의 가격을 지불하고 인수전을 벌이기에는 공식적으로 매물로 나온 회사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KDB생명과 ABL생명, MG손보 등은 브랜드 가치와 영업력이 상대적으로 낮아, 인수를 해도 대형사 중심으로 돌아가는 보험 시장에서 단기간에 실적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생명보험은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의 빅3 구도가, 손해보험은 삼성화재와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 등 빅5 구도가 심화되는 상황이다”라며 “현재 매물로 나온 회사들이 우리나 하나, 신한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달아도 지점이나 설계사 수 등에서 한계가 뚜렷해 단기간에 시너지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M&A 시장에서의 관심은 현재 공식적으로 매각이 진행 중인 보험사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롯데손보와 동양생명 등에 쏠리고 있다.
롯데손보의 최대주주인 JKL파트너스는 지난 10월 JP모건을 주관사로 선정해 매각을 위한 실무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 5년간 중국인 최고경영자(CEO)가 이끌었던 동양생명은 지난 5일 한국인인 이문구 대표이사를 새로 선임했는데,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내년부터 매각을 진행하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변수는 가격이다. 보험사 인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여겨졌던 금융지주사들은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지불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최근 정부가 연일 은행의 과도한 이자 장사와 막대한 수익에 대해 손을 보겠다고 엄포를 놓는 터라 M&A에 큰돈을 쓰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우리금융은 최근까지 상상인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하다 2000억원 이상의 가격은 곤란하다며, 인수 의사를 철회하기도 했다.
IB업계 관계자는 “새 회계제도 도입에 따른 각 보험사의 ‘민낯’이 명확하게 드러날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주사나 PEF가 인수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롯데손보와 동양생명은 지주사 브랜드로 간판을 바꿔 달 경우 대형사 중심의 판도를 흔들 만한 ‘게임 체인저’가 될 만하다”면서 “다만, 최대주주 측이 가격을 얼마나 합리적으로 조정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