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이 초고위험 투자상품으로 꼽히는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을 90대 이상 초고령층에게까지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90대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의 잔액은 100억원에 육박했다.
은행권은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지만, 초고령층에게까지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초고위험·고난도 상품을 권유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금융 당국 역시 금융회사가 소비자의 투자 목적 및 경험, 재산 상태 등에 비춰 적합한 투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이를 권유해선 안 된다는 ‘적합성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금융감독원이 제출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11월 말 기준 홍콩H지수 연계 ELS 판매 실적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이 90대 이상 고객에게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 편입 주가연계신탁(ELT)·주가연계펀드(ELF) 잔액은 90억8000만원으로 집계됐다.
시중은행 가운데 90대 이상 고령층에게 홍콩H지수 연계 파생상품을 가장 많이 판매한 곳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90대 이상 고객 11명에게 21건의 ELT 상품을 74억1000만원 규모로 판매했다. 하나은행 다음으로는 NH농협은행이 6명의 90대 이상 고객에게 8건의 ELT 상품을 9억3000만원어치 팔았다. 이어 KB국민은행(3명·6억6000만원), 신한은행(2명·8000만원) 순이었다. 우리은행은 90대 이상 고객에게 관련 상품을 판매하지 않았다.
시중은행이 초고위험 상품을 판매한 고령층을 60대까지 확대하면, 고령층에 홍콩H지수 연계 ELS 관련 상품을 판매한 비중은 더욱 커진다. 시중은행이 60대 이상에게 홍콩H지수 연계 ELS 편입 ELT·ELF를 판매한 잔액은 6조4539억원으로, 전체 판매잔액의 44.1%에 해당한다.
이처럼 은행권이 고령층에 대해 초고위험 투자상품으로 분류되는 홍콩H지수 연계 ELS 관련 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불완전판매의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초고령층 투자자의 가족 A씨는 “1934년생인 아버지의 투자성향이 공격성인 것으로 나왔다”라며 “최근 은행에 따지니 ‘고객이 원해서 한 것’이라고 90대 노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은행권은 재투자 등을 이유로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 당국은 은행권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특히 고령층에 대한 ELS 관련 상품 판매는 ‘적합성의 원칙’에 어긋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적합성의 원칙은 금융회사가 소비자의 투자 목적 및 경험, 재산 상태 등에 비춰 적합한 투자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이를 권유해선 안 된다는 것으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명시돼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은행이 약관을 설명했는지를 떠나 (고령층에) 수십%의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고위험·고난도 상품을 권유하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 적합성 원칙상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또한 “ELS는 80~90% 확률로 정기예금보다 이자가 더 나오지만, 10~20% 확률로 50% 손해를 볼 수 있는 굉장히 위험한 상품이다”라며 “은행에서 ELS를 산 어르신들이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 이런 경우가 많으면 문제를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꼬집었다.
고령층이 아니더라도 은행권의 홍콩H지수 연계 ELS 관련 상품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최근 홍콩H지수 연계 ELS 상품 투자자들 가운데 은행의 투자성향을 조작했다거나, 재투자라고 하더라도 첫 투자에서부터 ELS 상품의 위험성에 대한 고지가 없었다는 등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제기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
금융 당국은 홍콩H지수 연계 ELS 관련해 은행의 불완전판매 여부를 자세히 조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부위원장은 “ELS 상품 구조에 대해서 사는 사람은 물론 파는 사람조차도 이 상품을 모르고 판매한 것이 상당히 있다고 본다”라며 “얼마나 문제가 되는지 자세히 조사할 계획이고, 문제가 된다면 추가로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