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기조 지속으로 벤처캐피털(VC)업계의 펀드 자금 모집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시장 호황의 바로미터로 꼽히는 '결성총액 1000억원 이상'의 대형 벤처 펀드 수가 올해 들어 3분기까지 5개에 그쳤다. 작년만 해도 17개, 2021년엔 21개였다.

금융시장 변동성까지 커지면서 모험자본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했던 기관들이 출자를 줄인 영향으로, 그마저도 일부 대형 VC로만 몰리면서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중소형 VC는 최근 어려움이 커 존폐 위기를 느끼는 곳이 많다는 분위기다.

그래픽=손민균

11일 조선비즈가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전자공시를 통해 결성총액 1000억원 이상 대형 벤처 펀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올해 들어 9월까지 5개 결성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70% 감소한 것으로, 2019년(6개) 이후 4년 만에 한 자릿수 결성에 그칠 전망이다.

대형 벤처 펀드는 벤처투자는 물론 금융시장 업황까지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불린다. 대형 벤처 펀드는 중·후기단계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하는데, 대형 펀드 결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상장 등 자금 회수 시장도 원활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결성총액이 1000억원 이상인 대형 벤처 펀드는 2009년 국내 대형 VC 중 한 곳으로 불리는 인터베스트가 '신성장투자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결성한 이래 꾸준히 증가 추세를 이어왔다. 2021년에는 한해에만 21개 대형 벤처 펀드가 결성됐다.

업계에선 올해를 전에 없던 불황의 해로 분석한다. 작년에 이미 미국발 금리 인상이 시작했고 기업공개(IPO) 시장 위축으로 VC들의 투자금 회수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그럼에도 지난해에만 17개 대형 벤처 펀드가 결성됐기 때문이다.

기관투자자가 벤처투자에 지갑을 굳게 걸어 잠근 게 직접적 원인이 됐다. 모태펀드 예산이 줄었고, 민간도 보수적인 출자 기조로 돌아섰다. 특히 벤처투자 '큰손'인 연기금·공제회의 올해 상반기 벤처 펀드 출자액이 1076억원으로 전년 대비 80% 줄었다.

이런 가운데 대형 벤처 펀드 결성 감소는 중소 VC의 존립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출자자 기관들이 보수적으로 자금 운용에 나서면서 운용 능력이 입증된 VC로 우선 출자를 이어가자, 대형 VC들은 더욱 벤처 펀드 규모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결성된 대형 벤처 펀드 수는 크게 줄었지만, 펀드 1곳당 결성총액은 3243억원으로 전년 1770억원에서 크게 늘었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가 지난 9월 결성한 '에이티넘성장투자조합2023′은 824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중견 VC 대표는 "고금리 기조 속 기관이 투자 위험이 큰 벤처 펀드로의 자금 집행을 줄이는 것은 이해가 간다"면서도 "다만 중·후기 스타트업 투자를 주로 하는 대형 VC로만 자금을 몰아주면 초기 스타트업은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고 말했다.

중소 VC 대부분은 벤처 펀드 결성을 못 한 채 자본금만 까먹고 있다. 올해 '자본잠식'을 사유로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은 VC는 8곳으로 집계됐다. 2020년 이래 최대다. VC 신규 등록 수도 작년 42곳에서 올해 13곳(지난 9월 말 기준)으로 급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