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면서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선택하는 금융 소비자가 늘고 있다. 최근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낮은 수준에 형성되면서 당장 갚아야 하는 원리금 부담이 적은 고정금리로 돈을 빌리는 차주(돈 빌리는 사람)가 많았다. 하지만 내년 금리 인하에 대한 신호가 나오면서 현재 금리가 고점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변동금리 상품을 택하는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10월 신규취급액 기준 고정금리 주담대 비중은 67.2%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대비 8%포인트 감소한 수치이자, 연중 최저 수준이다.
고정금리 주담대 비중은 올해 들어 금리 인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지난 2월(69.8%)만 제외하고 줄곧 70~80%대를 유지해 왔다. 고정형 상품의 금리가 변동형보다 낮은 수준에 형성되면서 당장 갚아야 하는 원리금이 낮다는 점도 고정금리 상품의 확대 요인이 됐다.
그러나 아직 고정금리 상품의 금리 수준이 변동금리 상품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 상황인데도 차주들은 변동형 상품에 대해 또다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신규코픽스 기준)는 4.61~7.07%다. 고정금리(3.82~6.12%)와 비교해 금리 수준이 높게 형성돼 있다.
이처럼 대출시장의 상황이 변하고 있는 것은 내년부터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기준금리가 인하돼도 원리금 부담이 유지되는 고정금리 상품보다는 변동금리 상품의 매력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이르면 내년 2분기부터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국 역시 내년 하반기부터 기준금리를 낮추기 시작해 최종 금리가 2.50%까지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BE)는 한국은행이 내년 8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춰 분기마다 0.25%포인트씩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은행 관계자는 "최근 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글로벌 통화당국의 발언이 나오고 있어 다시 변동금리 주담대의 매력도가 높아지는 것 같다"라며 "고정금리에서 변동금리로 갈아타는 경우는 중도상환수수료가 있는 반면, 변동금리에서 고정금리 상품으로 갈아탈 때는 중도상환수수료가 면제되면서 우선 변동금리로 대출을 실행했다가 금리 상황에 따라 금리 형태를 갈아타려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직 신규 주담대 가운데 변동금리 비중이 추세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하락해 변동금리와 고정금리 상품의 금리가 역전되면 변동금리 상품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장기·고정금리 상품 확대를 통해 가계부채 구조를 전환하려던 금융 당국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금융 당국은 내년 1월부터 은행별 고정금리 대출실적을 예금보험료 차등평가 보완지표에 반영하는 방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또, 내년 1분기 순수 장기·고정금리 대출을 확대한 은행에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형태의 행정지도를 발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현재 가계부채 구조가 변동금리 상품이 높아 금리 변동 위험에 쉽게 노출되는 구조여서 고정금리 주담대를 늘리려고 하고 있다. 변동금리로 대출을 실행하면 기준금리 인상기 개인 입장에서는 갚아야 할 원리금 부담이 커진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개인의 소비 여력이 줄어 경제 침체로 이어질 수 있고, 개인 차주의 부실 가능성이 커지며 이로 인해 금융 전반의 리스크 증가까지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차주 개인의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이자 부담을 낮추는 것이 중요한 만큼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에 따라 원리금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변동금리 상품을 선택할 이유가 많아진 상황이다.
은행 역시 금리 형태를 선택하는 것은 고객의 의지에 따른 것이므로 금융 당국이 고정금리 확대에 각종 인센티브를 걸었다고 해서 고정금리 비중이 기대만큼 늘어나긴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고객에게 '고정금리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의 금리 수준이 낮다', '내년도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다'라는 등 금리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정보는 제공할 수 있지만, 변동 또는 고정금리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확정적으로 권유할 수 없다"라고 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내년도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나오면서 고정금리 비중을 많이 확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라면서도 "고정금리 대출 확대는 가계부채의 질적 구조 개선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인 만큼 계속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