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재활치료비 특약 판매가 중단됩니다. 그런데 전산 에러로 일요일까지 가입 가능하다고 하니 그 전에 미리 연락 주세요. 상해재활치료비, 절대 안 나옵니다.”
DB손해보험이 상해재활치료비 특약 한도를 축소하기로 결정하자 일선 영업 현장에선 이러한 홍보 문구가 돌아다녔다. 금융 당국의 제재로 비슷한 수준의 보장을 하는 특약이 곧 없어지니 빨리 가입하라고 권유하는 내용이다. 전산상 오류는 절판 마케팅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이유로 자주 등장한다.
‘곧 판매가 종료된다’는 식의 ‘절판 마케팅’이 실적을 이유로 반복되고 있다. 최근 금융 당국 제재가 거세지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모양새다. 보험 산업의 이미지 등을 고려해 보험사 스스로 자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DB손해보험은 상해재활치료비 특약 한도를 5만원으로 상향했으나, 금융 당국의 제재 조짐이 보이자 곧바로 한도를 3만원으로 줄였다.
일선 영업 조직은 한도 하향 결정을 절판 마케팅으로 활용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5만원을 보장하는 특약에 가입할 수 없다는 논리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해당 특약은 ‘핫한 보험’ ‘단돈 1만원’ ‘고객 문의 폭주’ 등 자극적인 단어로 수식됐다.
특히 올해는 금융 당국이 단기납 종신보험과 어린이보험, 운전자보험 중 변호사 선임비용, 독감보험 등에 대한 제재에 나서면서 절판 마케팅이 극에 달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당국 제재로 인해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는 보험사들이 있다”며 “고객이 손해를 보는 건 아니지만, 분명히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라고 했다.
아예 상품 출시 때부터 절판 마케팅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한 손해보험사는 최근 암보험에서 가입 가능한 항암방사선치료비 한도를 1억원으로 설정하면서 한 달 동안만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업계 최고 보장’과 ‘한 달만 판매’라는 문구로 이목을 집중시켜 자사 암보험 상품을 홍보하겠다는 전략이다.
10년 전에도 절판 마케팅은 있었다. 2013년 일시납 보험 비과세 한도가 2억원 이하로 낮아지는 세제개편안이 적용되자 보험사들은 2012년부터 5%가 넘는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판매했다. 지금 가입하지 않으면, 앞으론 세제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논리였다.
결국 보험사는 고금리 저축성 보험 만기 도래로 지난해에만 환급금으로 67조2425억원을 지급해 유동성 위기를 맞았다. 보험사들은 역마진 우려에도 또다시 고금리 저축성 보험을 판매해 현금을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판매된 저축성 보험의 만기가 돌아오는 10년 뒤에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험업계가 절판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실적 때문이다. 하지만 절판 마케팅이 끝나면 보험에 가입하려는 수요는 급감한다. 단기 실적에만 열을 올리다 리스크만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셈이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은 지난 1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보험시장 건강성 회복을 위해 절판 마케팅을 매우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절판 마케팅이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어서 제재 수단도 마땅치 않다. 보험사 스스로 절판 마케팅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절판 마케팅에 대해 “실적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라면서도 “좋은 모습은 아니다. 지나치게 사행성을 조장하는 마케팅은 업계가 나서 자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