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고금리가 이어지며 은행권이 막대한 이자 이익을 벌어들이자 '횡재세(초과이윤세)'를 통한 초과이익 환수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정부 당국에 이어 여야 정치권으로도 횡재세 관련 공감이 확산하면서 향후 은행권 초과이익 환수 논의가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시장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주장과 은행의 과도한 이익 추구를 방지할 수 있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9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재 은행 횡재세 부과와 관련된 내용의 법안은 민병덕·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성만 무소속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이 각각 발의한 법인세법 개정안, 서민의 금융생활지원법 개정안,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법 개정안 등이 계류돼있다.
횡재세란 특정 산업군에 과도한 이익이 발생할 때 세금으로 이를 환수하는 제도다. 법으로 적정 이익 수준을 미리 설정해 두고 이를 넘으면 세금을 더 부과하는 방식이다.
정치권에서 횡재세를 도입하려는 데는 은행이 고금리 효과를 누려 막대한 이자 수익을 벌었기 때문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3분기 누적 이자이익은 30조9366억원으로 전년 동기(28조8052억원) 대비 7.4% 증가했다. 3분기 누적 기준 첫 30조원 돌파다.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횡재세 부과가 실제 이뤄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값이 많이 치솟은 유럽에서는 지난해 에너지 기업의 과도한 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횡재세인 '연대 기여금'을 도입했다. 스페인과 헝가리 등에서는 은행에 횡재세 부과를 확대했다. 최근 이탈리아는 1년간 은행의 순이자 이익의 40%를 횡재세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은행권 횡재세 부과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엇갈리는 상황이다. 횡재세를 부과하면 부족한 재정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득을 재분배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또 은행이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는 유인을 법적으로 제거하기 때문에 무리하게 가산금리를 올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통상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은 예금금리에 1.5%포인트를 더해 대출금리를 산출해야 한다"며 "그러나 최근 은행권은 예금금리에 3%포인트에서 5%포인트가량을 더해 대출금리를 산정해 막대한 이자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은행이 나서서 가산금리를 낮춰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나서 횡재세를 매기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은행은 서민이 돈을 빌릴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인 만큼 재분배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횡재세가 사실상 가격 상한제 같은 역할을 해 은행의 효율적 경영을 막고 외국인 투자자 이탈을 가져오는 등 시장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미 법인세를 내는 은행에 추가로 횡재세까지 지우면 이중과세 문제도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은행이 이익에 비례해 법인세를 내고 있는데 추가로 횡재세를 부과할 경우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며 "횡재세를 부과하면 초과이익 범위도 정해야 하고 실제 실행했을 때 기업의 투자 의욕이 저하할 요인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김 교수는 "횡재세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서민금융상품의 출연금이나 기부금을 더 많이 내는 형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은행 등 금융사는 지난 2021년부터 서민금융법 시행령에 따라 가계대출 잔액의 0.03%를 서민금융상품 재원으로 출연하고 있다. 은행은 매년 1000억원 정도를 출연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 출연금에 복권 기금 등을 더해 서민금융상품을 운영한다.
최근 서민금융상품의 수요가 높아지는 만큼 은행 출연료율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서민금융진흥원에 따르면 현재 햇살론, 최저신용자특례보증, 소액생계비대출 등 서민금융상품 대출 규모는 ▲2020년 4조5394억원 ▲2021년 4조9603억원에 ▲2022년 6조9319억원 등으로 매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금융당국도 횡재세 부과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9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횡재세를 논의하고 있느냐'는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횡재세 문제는 장단점이 있기에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확정된 바는 없다"고 답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연초 은행 산업의 공공성, 경쟁촉진 필요성을 생각해서 여러 대안을 마련해 발표했는데 지금도 은행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회공헌을 할 수 있는지 보고 있다"고 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의 '횡재세보다 햇살론 등 정부 서민금융상품에 은행의 출연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질문에 대해 김 위원장은 "좋은 방향인 것 같다"면서도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