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전송대행기관(중계기관) 선정을 놓고 의료계와 금융 당국, 보험업계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진료기록과 보험청구 정보를 중계하는 기관에 대해 의료계는 공공기관이 아닌 핀테크 기업과 같은 민간 기업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보험업계는 핀테크 기업에 민감한 의료 정보를 맡길 경우 정보 유출이 우려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양측의 이견을 조율해 연내 중계기관을 선정할 계획이다.
8일 보험업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감독원,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및 소비자단체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태스크포스(TF) 회의를 개최하고 중계기관 선정에 착수했다.
실손청구 간소화 방안이 담긴 보험업법 개정안이 지난달 6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내년 10월 25일부터 환자가 요구할 경우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의료기관이 보험사로 전송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실손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병원이나 의원, 약국에서 일일이 종이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해야 했다.
TF는 중계기관 선정을 위해 ‘의료·보험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 TF는 연내 중계기관을 선정할 계획이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과 보험개발원이 가장 유력한 중개기관 후보로 거론된다. 그러나 의료계가 두 기관의 중개기관 선정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심평원의 경우 공공기관이 보험금 청구 대행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의료계는 병·의원급의 비급여 진료명세가 심평원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정부와 보험사가 비급여 진료 정보를 명확히 파악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개발원은 보험사의 회비로 운영되는 기관이라 공정한 정보 중계를 할 수 없다는 게 의료계 반론이다. 의료계에서는 핀테크 기업과 같은 민간기업이 전산을 구축해 중계기관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편인 국내 핀테크 기업이 전국 병의원 9만8479곳과 30여개 보험사 간 전산망을 구축·운영해야 한다는 점이다. 보험업계는 핀테크 기업이 중계기관을 맡길 경우 전산망 구축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의료 정보 유출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보험업계는 고도의 보안 설루션을 갖춘 대형 기관이 중계기관으로 선정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핀테크업계에서도 이런 대형 사업에 선뜻 나설 곳이 없다는 입장이다. 핀테크업계 한 관계자는 “시스템 구축과 유지, 운영에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소요되는데 의료계 반대도 거세 언제 사업이 축소될지 모른다”며 “중계하는 정보를 활용할 수도 없어 핀테크 기업에 실익이 없는 사업이다”라고 했다. 보험업계는 시행 1년이 남은 시점에서 중계기관 선정부터 지연될지 우려를 표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내년 10월 25일부터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차질 없이 시행되도록 시행령 등 하위규정을 내년 초 입법예고하고, 추진 필요사항을 철저하게 준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