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엔'이라고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대장성(현 재무성) 차관은 2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김유진 기자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최저치에 도달했다고 봐도 됩니다. 조만간 반전이 이뤄지며 내년 여름쯤에는 130엔 정도가 될 것입니다.”

‘미스터(Mr.)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榊原英資·82) 전 대장성(현 재무성) 전 차관은 2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을 이같이 전망하며 “다른 주요 통화 대비 환율도 (달러 대비와 같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1990년대 일본 대장성에서 외환정책으로 총괄한 국제금융시장 및 외환정책 전문가다. 대장성 차관 당시 과감한 환율 개입을 단행하며 미스터 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달러당 엔화 환율은 이달 1일 장 중 151.74엔까지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10월 21일 이후 최저 수준이다. 미국 등 주요국의 금리 인상 기조와 달리 일본은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엔저 현상이 조만간 끝날 것이라고 관측한 이유로 일본의 경제 성장을 꼽았다.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앞으로의 엔화 환율은 당연히 미국과 일본의 경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게 될 것”이라며 “현재 미국의 경제 상황을 봤을 때에 미국의 성장은 둔화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일본의 성장은 견실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미국 경제 악화가 시작된다고 보는 전문가가 많다”며 “반대로 일본 경제는 지금까지 연평균 1%대의 성장률을 유지해 오다가 올해와 내년에 2% 성장을 한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엔화가 강세로 전환할 것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앞서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지난 7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는 내년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4개월 만에 이 전망을 대폭 수정했다. 이에 대해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그 당시 미국과 일본의 경제 상황을 보고 예측했지만, 4개월 동안 변화가 있었다”며 “지금 일본의 경제는 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이고, 미국은 경제 침체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 정부에서 엔화 약세를 용인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일본의 금융 당국에서도 (엔저 현상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지금 용인하고 있는 이유는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 130엔까지 떨어질 거라고 판단을 하기 때문에 지금은 그대로 놔두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일본 정부의 환율 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는 “비밀스럽게 개입한다고 해도, 결국 알려지게 돼 있다”고 일축했다.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엔저 현상이 끝나는 것과 맞물려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도 변할 것이라고 봤다. 현재 일본은행(BOJ)는 마이너스 금리 등 양적완화를 시행 중이다. 그는 “일본 경제는 오랫동안 디플레이션을 겪고, 지금은 상황이 회복돼 인플레이션이 2~3%대에 머물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일본 중앙은행 측에서 경기가 과열되는 조짐을 보인다고 하면, 지금의 양적 완화 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시점은 내년 여름쯤이 되지 않을까 관측한다”고 했다.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이 시기에 맞춰 일본에 대한 투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이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현재 엔화를 빌려서 고금리 국가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가 활성화돼 있다.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엔화 강세로 달러당 130~140엔이 되면 지금까지 해외로 투자됐던 자금이 다시 국내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엔화가 강세로 전환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엔화에 투자하는 것은 좋은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에 접어들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사카키바라 전 차관은 “일본의 경제 성장률이 둔화돼 1% 정도로 낮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경제가 성숙해서 그렇게 경제 성장률이 낮게 나온 것이지 일본은 경제가 약화된 것이라고 보지는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잃어버린 30년’이라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면서도 ”한국 경제도 성숙하게 되면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