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정서희

지난 10년간 5대 시중은행이 금융사고를 신고한 내부고발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고발제도는 금융사고를 미리 방지하고 사고 발생 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1차 방어선’의 성격을 갖는다. 수백억, 수천억원대의 횡령 등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조기에 방지할 수 있는 수단임에도 은행들이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5대 은행 내부고발자 신고 건수 및 포상금 지급 내역’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이 지난 10년간 내부고발자의 신고를 받아 금감원에 즉시 보고한 금융사고 건수는 총 19건으로, 이중 은행에서 내부고발 직원에게 포상금을 지급한 적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금감원은 횡령, 유용, 배임, 사기 등 금전 사고 및 금품수수, 사금융알선, 금융실명법 위반 등 금융질서 문란행위 등에 해당하는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즉각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은행별로는 KB국민은행이 7건으로 내부고발 건수가 가장 많았으며, 신한은행 6건, 우리은행 5건, 하나은행 1건, NH농협은행 0건 순이다. 포상금 외의 인센티브가 제공된 사례도 드물었다. KB국민은행은 2021년 한 차례 내부고발 직원에게 은행장 표창을 수여했으며, 신한은행은 신고자의 인사 이동 요청을 두 차례 반영했다.

은행들은 부당 행위, 법규 위반, 금융 사고를 고발한 내부고발자에게 포상 조치를 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13년부터 포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급 한도는 최대 10억원이다. 신한은행도 2010년부터 5억원 한도의 내부고발자 포상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올해 3월, 7월 내부통제 규정을 개정해 포상 기준을 10억원으로 상향했다.

그럼에도 포상금이 단 한 차례도 지급되지 않은 것은 은행들이 내부고발자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에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내부고발을 꺼리는 문화를 바꾸려면 사안에 따라 소액이라도 포상금을 지급하고 신고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강화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데, 실상은 관심이 없다”며 “인센티브가 없는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힐 위험을 감수할 직원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했다.

내부고발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며 내부통제 실패에 따른 금융사고가 잇따르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횡령 등 금융 사고는 같은 팀,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내부고발 없이는 조기에 발견하기 매우 어렵다”며 “내부고발 제도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것 또한 내부통제 실패다. 이는 곧 대형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했다.

내부고발자로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포상금 규모가 너무 적다는 의견도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취업 기회 제공 등 내부고발자에 대해 보호 조치가 전무한 상황인데 포상금까지 적으면 누가 내부고발에 나서겠냐”며 “포상금을 늘려 내부고발 유인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미국식 포상금 제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국은 금융사가 낸 과징금의 10~30%를 내부고발자에게 포상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는 과징금이 국고에 귀속되는데 미국은 금융 당국이 이를 관리하며 내부고발자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제도 전반을 뜯어고치기 위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