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같은 공돌이(공과대학 출신)가 봤을 때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됐어요. 기술은 해마다 급격히 진보하는데 금융 서비스는 5년, 10년이 지나도 편의성이 그대로였거든요.”
해외송금 서비스 모인을 운영하는 서일석(40) 대표는 “미국 유학 시절 한국의 부모님으로부터 돈을 주고받으며 겪은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모인 창업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모인은 미국·캐나다·일본 등 전 세계 47개국 계좌로 해외송금을 지원하는 핀테크(FinTech·금융과 기술의 합성어) 기업이다. 기존 시중은행 창구에서 해외송금을 이용할 때보다 90% 가까이 저렴한 수수료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수료는 물론 해외계좌에 돈이 입금되는 거래시간도 줄여 유학생을 중심으로 모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해엔 모인비즈플러스를 출시하며 기업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새로 선보였다.
지난 2016년 3월, 2명이 머리를 맞대고 시작된 모인은 캡스톤파트너스·스트롱벤처스·보광창업투자 등 벤처캐피털(VC)의 투자를 바탕으로 설립됐다. 투자라운드마다 투자 유치를 확대하며 사업의 세는 불고 있다. 지난달 기준 누적 회원 수는 25만명을 돌파했고 기업고객은 3000곳 이상이다. 거래금액 역시 매해 늘어 5년 전인 2018년과 비교해 올해 7배가량 성장했다.
창업 전 서 대표는 KAIST(한국과학기술원) 공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소프트웨어개발을 하다 VC업계에 투신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개발을 배우며 기술이 주는 이로움을 체화했고 금융투자업계에 종사하며 창업의 옥석을 가리는 법을 터득했다.
서 대표는 “VC 심사역으로 있을 때 창업기업이 어떤 문제를 풀고자 하는가, 그 문제가 시장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창업멤버들의 역량은 어떠한가 등 3가지가 조화를 이루는지 평가한다”며 “VC 시절 여러 스타트업의 문제 해결 사례를 접하면서 어떤 자세로 창업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25일 서 대표와 서울 강남구 모인 사무실에서 만나 모인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모인을 창업한 계기가 궁금하다.
“유학시절 느꼈던 해외송금의 불편함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2006년, 카네기멜론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처음 미국에 와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보낸 돈이 며칠째 오지 않아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우여곡절 끝에 받기는 했으나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이 오는 과정을 추적하지도 못했다. 나중에 살펴보니 해외로 유학 간 후배들도 똑같은 불편함을 느끼더라.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시장을 조사했는데 해외송금시장이 커지고 있었다. 2017년, 외국환거래법 개정이 예고돼 비금융사업자의 외화송금이 시작을 앞두고 있었고 그 시기를 맞춰서 모인을 창업했다.”
—모인은 기존 시중은행과 비교해 90%가량 저렴한 수수료를 받고 해외송금 서비스를 제공한다. 수수료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
“기존 해외송금에는 스테이크 홀더(이해관계자)가 너무 많다. 돈을 보내는 은행·중개 은행·수취 은행·스위프트(SWIFT·국제 금융기관 데이터 전송 기관) 등이 수수료를 떼 간다. 최대한 스위프트망을 안 쓰고 송금 은행과 수취 은행을 직접 연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라마다 방법은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과 일본에서 서로 돈을 보낼 때 매핑(Mapping·어떤 값을 다른 값에 적용하는 것)해서 각 나라 안에서 돈이 자체적으로 이동하도록 알고리즘을 만들었다. 이런 방식을 통해 한·일 양국 간 실시간 송금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가 할 일은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돈을 보낼 때 제일 싸고 빠른 길을 찾는 것이다.”
—스위프트망을 안 거치고 해외 은행과 직거래하는 기존에 없던 사업 모델을 출범했다. 기존 금융권에서 반발은 없었는가.
“외국환거래법이 개정될 때 은행의 반대가 컸다. 사업 초창기 은행이 우리 같은 핀테크 회사와 제휴를 맺으려 하지도 않았다. 우리 같은 사업자가 새로 뛰어들면서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은 늘고 비용은 줄어드는 후생이 발생했다. 그러자 최근엔 시중은행에서도 핀테크 연구 부서를 세우고 혁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은행이 처음부터 국제 거래망을 세우려면 초기 비용이 많이 든다. 모인은 그런 은행을 대상으로 네트워크와 설루션을 제공하는 화이트 레이블 상품을 제공하려 한다. 네트워크사로서 금융사와 손을 잡고 싶은 것이다.”
—주요 수입원이 궁금하다.
“송금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다. 기업 고객은 1% 미만의 수수료를 받고 있고 국가마다 수수료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 수수료가 중요하기에 이용자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 초창기부터 일본·중국 등에 가서 유학생을 상대로 시장조사를 벌였다. 현재도 해외의 한인 학생 단체와 교류하며 서비스를 알리고 있다.”
—지난해 기업용 서비스인 모인비즈플러스를 출시했다.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은 모인 창업 때부터 구상해 오던 모델이다. 기업의 해외송금이나 온라인 직구 쇼핑 시장이 커지고 있지 않은가. 네트워크사인 모인은 이런 수요를 작은 단위로 나눠 분석하고 종합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사업 경험과 노하우를 쌓기 위해 개인송금부터 시작했다. 실제로 해외엔 유학생뿐만 아니라 개인 사업자도 많다. 이들의 경상거래에서 발생하는 해외송금 업무 관련해 도구를 만들어 달라는 수요가 적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송금 업체들이 타격을 받았었다. 모인의 경우 어떻게 당시 어려운 상황을 타개했나.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되자 개인 고객 중 가장 큰 비중인 유학생 인구가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한국에 있던 사람이 새로 나가지를 않으니 해외송금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 빠르게 위기관리 계획을 짰고 개인송금 다음으로 사업에서 비중을 차지하던 직구 관련 사업을 더 공략했다. 해외직구족이 모인 커뮤니티를 찾아다니며 이들의 불편사항을 해소하려고 노력했고 덕분에 사업 관련 지표가 꺾이지 않았다.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면 새 성장동력을 구하지 못해 사업에 위기가 찾아왔을 것이다.”
—핀테크 산업 활성화 관점에서 국내 규제 환경은 어떤가.
“해외송금 측면에서 핀테크 업체가 기존 금융권보다 더 많은 규제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은행의 무증빙 해외송금은 올해 7월부터 10만달러까지 올랐다. 하지만 핀테크 스타트업은 여전히 5만달러 수준이다. 어떻게 보면 기득권 금융사에 더 혜택을 주는 것이라 규제의 본래 목적과 맞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동등한 조건에서 더 안전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고를 수 있어야 하는데 일부 업체만 혜택을 받고 있다.”
—목표가 있다면.
“아시아의 페이팔이 되는 게 목표다. 개인과 기업이 해외로 돈을 주고받는 데 있어 자연스럽고 편한 환경을 만드는 네트워크사가 되는 게 모인의 큰 그림이다. 언젠가 동아시아의 거대 시장인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대표적인 핀테크 회사가 나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회사가 될 것이다. 조급하게 사업을 굴리기보다 견실하게 성장하겠다. 금융 서비스인 만큼 신뢰도 중요하고 금융 당국의 가이드라인도 준수하면서 우리 의견을 관철하는 긴 호흡의 정석을 밟아나가겠다.”
☞서일석 모인 대표는
▲KAIST 전산학 학사 ▲카네기멜론대학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석사 ▲삼성전자 선임연구원 ▲소프트뱅크벤처스 책임심사역 ▲퓨처플레이 투자 총괄 ▲데일리금융그룹 C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