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 크로스앵글 공동 대표. /정민하 기자
"창업 초기부터 온체인 데이터(블록체인에 기록된 데이터) 기반 서비스, 설루션 그리고 리서치 영역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라 글로벌 가상자산 공시와 평가로 사업을 시작했죠. 이제는 시장이 성숙해지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원래 하려던 일에 집중하려 합니다. 궁극적으로 웹 3.0계의 팔란티어(미국 빅데이터 기업) 같은 회사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가상자산 정보 플랫폼 '쟁글'을 운영하는 크로스앵글의 이현우 공동대표는 대표 서비스였던 가상자산 공시를 일시 중단한 이유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웹 3.0은 이용자의 데이터가 플랫폼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블록체인 등을 통해 개인이 소유하고 보호하는 탈(脫)중앙화 형태를 의미한다.

2018년에 설립된 크로스앵글은 블록체인 생태계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해서 웹 3.0 대중화(Mass adoption)를 앞당기는 게 목표다. 그동안 공시 플랫폼 '쟁글'을 출시해 규제 사각지대였던 가상자산 시장에서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빗썸·코인원·코빗 등 대형 거래소에도 쟁글의 공시가 올라왔다. 이렇게 지금까지 400개가 넘는 가상자산을 분석하고 관련 정보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크로스앵글은 최근 공시·평가 서비스를 중단하고, 데이터 기반 설루션 및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으로 재정비하고 있다. 더 큰 시장에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쟁글 1.0이 제공하는 정보가 단순 공시였다면, 2.0은 온체인 데이터 분석이 가능한 심화 버전이다"라고 강조했다.

SaaS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모델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365, 구글 드라이브, 슬랙(Slack), 줌(Zoom) 등이 대표적이다. SaaS는 기업이 새로운 소프트웨어 기능을 구매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여주고, 사용자는 인터넷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 대표가 지향점으로 제시한 팔란티어도 이에 속한다. 팔란티어는 빅데이터로 범죄와 테러를 감지하는 대정부 설루션 등으로 360여곳의 정부 및 기업 고객을 확보했고 기업 가치가 수십조원에 달한다.

크로스앵글은 블록체인 데이터 기반 기업형 설루션 출시를 앞두고 있다. 웹 3.0 기업 성과 관리와 회계 처리 등이 가능한 전사자원관리(ERP) 설루션 '쟁글 비콘' 베타 서비스와 블록체인 네트워크 안에서 발생하는 온체인 데이터를 검색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익스플로러(Explorer)'를 연내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달부턴 글로벌 금융 데이터 분석 도구 플랫폼인 블룸버그 터미널에 크립토 시장 분석 보고서를 제공하고 있다.

크로스앵글은 지난해 4월 약 17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다. KB인베스트먼트, 신한캐피탈, 프리미어파트너스, IMM 등이 참여했다. 2019년엔 설립 1년 반 만에 한화투자금융으로부터 40억가량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이 대표를 서울 강남구 크로스앵글 본사에서 만나 구체적인 사업 전략, 블록체인의 미래 등에 대해 물어봤다.

크로스앵글 제공

―현재 운영하는 블록체인 데이터 기반 사업을 설명해달라.

"현재 기업을 대상으로 자문(Advisory) 서비스, 데이터 기반 설루션 서비스, 네이버 증권에 들어가는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웹 2.0에서 웹 3.0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연결해 주는 사업이라 보면 된다.

우선 자문 서비스는 웹 3.0을 도입할 때 어떤 사업 전략을 가지고 시작해야 하고, 왜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 리서치 관점에서 답을 제공한다. 설루션 서비스는 웹 3.0을 도입하는 기업에 크로스앵글이 갖고 있는 데이터 인프라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API는 응용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때 운영체제에서 동작하는 프로그램을 쉽게 만들 수 있도록 화면 구성이나 프로그램 동작에 필요한 각종 함수를 모아놓은 것을 말한다.

앞으로는 웹 3.0 기업이 쓸 수 있는 SaaS 서비스가 가장 중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곧 출시하는 ERP 설루션 쟁글 비콘이 그것이다. 웹 3.0이 도입되면 웹 2.0 기반의 SaaS 서비스를 그대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체불가토큰(NFT)을 발행해 얻은 2차 수익 회계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토큰 발행 시 유통기한 관리는 어떻게 할지, 서비스 이용도와 강점 및 약점은 무엇인지 등을 설루션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타사보다 빨리 설루션 개발 및 리서치 영역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처음부터 이쪽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웹 3.0은 블록체인이라는 인프라부터 시작한다. 이 위에 토큰이 올라가고, 인센티브 구조가 도입되고, 생태계가 돌아가면 데이터가 올라온다. 이걸 어떻게 활용, 즉 해석할지가 핵심인 것이다. 온체인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인프라와 이를 해석할 수 있는 리서치 역량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크로스앵글 제공

―블룸버그 터미널엔 어떻게 보고서를 제공하게 됐나.

"직원의 지인 중 전통금융권에서 일하는 한 분이 쟁글 리포트가 블룸버그 터미널에 실리면 전 세계 금융권 종사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이를 듣고 블룸버그를 설득해 보고서를 게재하게 됐다. '한국은 더는 트레이딩 위주의 시장이 아니다. 웹 2.0에 웹 3.0을 도입하고, 웹 3.0에 웹 2.0을 도입하는 어돕션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이다.

쟁글의 리서치 역량이 글로벌 차원에서도 인정받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웹 3.0 커뮤니티 내에서만 소비되는 리서치 콘텐츠가 아니라, 꾸준히 전통 산업 내에서도 웹 3.0 관련 내용을 전파했던 수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라 생각한다. 크립토가 단순한 투기의 수단이 아니라, 펀더멘털(기초체력)을 갖춘 성숙한 자산 시장으로 발전하는 여정을 전통 금융권의 투자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해 나가려 한다."

―창업 및 운영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창업 초기에는 사무실을 찾기도 어려웠다. 크립토 자체가 불법으로 규정돼 있었기에 건물주들이 불안해했고, 5번 정도 퇴짜를 맞았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산업이 조금씩 성숙해 가고, 제도권에서도 인정받아 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관련 법규도 생기고 국회 쪽에서 먼저 자료나 설명을 요청하기도 한다. 물론 시장의 성격이 단기간에 굉장히 급격하게 바뀌어서 운영하기 어렵지만, 오히려 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은 왜 대중화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앞으로 인공지능(AI)이 발전하게 되면 데이터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부가가치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AI 모델의 연료가 되는 것이 데이터이고, 기업이 인건비로 지출하던 영역이 AI로 대체되면서 AI 모델 자체가 직접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현재는 대형 IT 기업이 소유하고 있는데, 실제로 데이터가 돈이 되는 연결고리가 명확해질수록 데이터를 실제로 만들어 내는 개인을 배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데이터의 소유권과 데이터가 사용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분배하는 인프라로서 블록체인이 가장 적합하다."

이현우 크로스앵글 공동 대표. /정민하 기자

―가상자산시장의 과거와 미래는.

"크립토 시장은 지난 13년간 4~5년 주기의 사이클을 4번 정도 겪었다. 시장은 매우 뜨거운 1~2년과 무관심의 2~3년을 주기로 변화했지만, 시장이 뜨거웠을 때 세계 최고의 자본과 인재들이 업계에 유입되어 인프라가 지속해서 성숙해 왔다. 이제는 제도권 내에 정식으로 편입하는 입구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음 사이클은 개인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기업과 기관 투자자의 비중이 어느 정도 확보된 형태로 진행될 확률이 높다고 본다."

―투자자가 중요하게 봐야 할 지점은.

"블록체인이라는 인프라가 갖고 있는 잠재력이 워낙 광범위하고 크기 때문에 규제 및 관련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예를 들어 결제 사업의 경우 블록체인 기반 결제 시스템을 제도권에서 인정하게 되면, 기존 전자지급결제대행(PG)·전자금융보조업(VAN) 등 수수료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사업에는 엄청난 위협이 될 수 있다. 개인 정보 보호와 관련된 기술적, 규제적 해결책도 찾아야 한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다시 불장이 와서 자산 가격이 오르고 새로운 희망이 생겨도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크립토와 블록체인 인프라가 궁극적인 미래라는 확신을 갖되, 긴 호흡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현우 크로스앵글 공동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사 및 석사 ▲오픈서베이 공동창업자 ▲닥터키친 최고기술책임자(C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