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장과 적극적으로 소통할수록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위기를 빠르게 진압할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뱅크런 위기가 닥치면 예금자들은 은행의 실제 건전성과는 상관없이 돈을 찾으려고 한다. 이 경우 당국이 금융안정과 관련한 공적 체계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할수록 예금자의 뱅크런에 대한 불안 심리는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일 예금보험공사는 국제결제은행(BIS)의 학술 논문을 인용해 정부가 뱅크런 상황에서 예금자 등의 불안심리를 해소하기 위해 은행 시스템이 문제 없다는 점 등을 표명하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펼칠 경우 예금 인출 성향이 효과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BIS는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대형은행 부실이 다른 은행 예금자의 예금인출성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검증하고, 정부의 커뮤니케이션이 예금자의 예금인출성향을 완화할 수 있는지 분석했다. 자산 276조원 규모의 SVB는 '디지털 뱅크런'으로 빠르게 자금이 인출되며 단 이틀 만에 초고속으로 파산했다.
BIS는 이번 조사에서 예금자 표본 6000명을 대조그룹과 4개 처리그룹(각 1000명)으로 나눠 각기 다른 정보를 제공하고 평균적인 예금인출성향의 변화를 비교 분석했다. 표본 그룹의 84.7%는 주거래 은행의 예금 안정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전체 은행의 예금 안정성이 높다는 응답률은 77.6%에 그쳤다.
대조그룹(2000명)은 추가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SVB가 뱅크런 이후 파산했다는 정보를 제공한 처리그룹 1에서는 예금자의 예금인출성향이 대조그룹에 비해 1.7%포인트 증가했다. 대형은행의 파산 정보만으로 예금 인출이 증가한 것이다. 이는 대형 은행의 부실이 다른 은행들의 연쇄적인 위험을 초래해 은행 시스템 전반의 불안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반면, 중앙은행과 예금보호기구의 정보를 습득한 예금자는 예금을 인출하려는 경향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은행 파산 시 1인당 25만달러까지 예금을 보호한다는 정보를 가진 처리그룹 2는 예금인출성향이 대조그룹에 비해 1.5%포인트 감소했다. 예금보험제도로 은행이 파산하더라도 예금이 보호돼 손실이 제한되므로 예금인출이 완화된 것이다.
처리그룹 3은 은행에 긴급유동성을 지원할 권한을 가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은행 시스템의 안정성을 강조했다는 정보를 취득했다. 이 그룹에서는 예금인출성향이 대조그룹에 비해 1.7%포인트 감소했다.
다만,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은행 시스템의 견고함을 강조하는 연설을 들은 처리그룹 4에서는 예금인출성향이 유의미하게 변하지 않았다.
BIS는 정부의 커뮤니케이션 노력이 예금자의 불안 심리에 따른 뱅크런을 방지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BIS는 "예금자 대부분이 평소 주거래 은행의 안정성을 확신하고 있더라도 위기 상황에서는 불안심리 확산에 따른 뱅크런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라며 "중앙은행과 예금보험기구 등의 예금자 신뢰 제고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노력이 불안 심리에 따른 과도한 예금인출 억제에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라고 했다.
이어 BIS는 "특히 디지털 발달로 패닉에 따른 뱅크런 속도가 과거에 비해 훨씬 빠르므로, 커뮤니케이션이 신속하게 예금자 등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상황별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 등을 갖출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