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국회가 멈춰서면서 수출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과 기업 구조조정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소관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안이 올해 안에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통상 10월은 국정감사가, 11월엔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있어 개별 법안에 대한 논의가 뒤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내년을 장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극한 대치를 벌일 가능성이 커 법안 처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방산·원전·우크라이나 재건 등 수조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 수주전이 본격화되고 있으나 정작 국내 수출 기업에 대한 정부의 금융 지원이 어려워 계약이 물 건너갈 위기에 처했다. 기업 구조조정 역시 마찬가지다. 워크아웃(채무조정) 근거법이 10월 15일 일몰되는데, 이 경우 일시적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이 줄도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금융권 및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소속 윤영석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7월 발의한 '한국수출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두 달 넘게 기재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통상 법안이 발의되면 소관 상임위에 회부된 후 법안소위로 넘겨져 심사를 받고 전체회의에 상정된다. 이후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를 거쳐 본회의를 통과해야 입법이 완료된다.
이 개정안은 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을 15조원에서 30조원으로 두 배 늘리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수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수은은 자본금이 많을수록 수출 기업에 지원할 수 있는 자금 여력이 늘어난다. 현재 수은이 정부로부터 출자받은 납입자본금은 14조8000억원으로, 최대 자본금 한도인 법정자본금의 98.5%가 찼다. 정부로부터 출자를 받아 자본금을 늘리고 싶어도 한도가 임박해 자금을 지원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로 인해 최대 3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국내 방산기업들의 폴란드 무기 수출 2차 계약 체결이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통상 해외 방산·조선·건설·플랜트 사업의 경우 입찰 당사국이 자금을 빌려주거나 대출 보증을 서도록 요구하는데, 이 역할을 수은이 맡는다. 문제는 수은은 동일 차주(돈 빌리는 사람)에 대해 자기자본의 40%까지만 대출 및 지급 보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현재 수은 자본금 수준에서는 폴란드 정부에 7조원안팎을 지원할 수 있는데, 이미 1차 계약에 따라 6조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남은 자금 여력이 1조원뿐이다.
200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우크라이나 재건, 네옴시티 프로젝트 진출도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규모 프로젝트 시장이 속속 열리고 있는데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에 달하는 금융 지원을 수은이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자본금 한도 상향 등이 이른 시일 내 국회에서 논의가 돼야 한다"고 했다.
워크아웃의 근거법인 '기업구조조정 촉진법'도 정무위 법안소위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 법은 워크아웃을 통해 부실 징후가 있는 기업의 회생을 지원하는 제도다. 채권 금융기관의 75% 이상이 동의하면 채무 유예 및 탕감, 추가 자금 지원 등이 가능하다. 대신 기업 회생을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지난 2001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기촉법은 현재까지 다섯 차례 연장됐으며 오는 10월 15일 일몰 기한이 또다시 도래한다.
기촉법이 일몰될 경우 기업 구조조정 공백이 생기게 된다. 대출 상환 유예 종료와 금리·물가 상승 등으로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워크아웃까지 중단되면 '줄도산'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번지고 있다. 기업회생 절차가 아닌 파산으로 직행하는 기업이 늘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유가증권·코스닥시장 상장사 한계기업 비중은 2017년 9.2%에서 지난해 말 17.5%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정무위 관계자는 "법안소위가 일단 열려야 법안 심사가 가능한데 언제 열릴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며 "국감, 예산 정국이 이어지며 논의가 뒤로 미뤄질 가능성이 커 사실상 올해는 법안 통과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