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어린이보험과 단기납 종신보험에 대한 제재에 나섰으나, 보험사들은 이를 피해 꼼수 판매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 당국 제재가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모양새다.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이달부터 최대 가입연령이 15세를 초과하는 상품 이름에 ‘어린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어린이에게 발생빈도가 적은 뇌졸중·급성심근경색 등 성인질환 담보를 부가한 상품을 어린이보험이라고 판매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이보험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품 이름에서 어린이라는 단어만 제외한 채 기존 조건과 유사한 보험을 판매하는 것이다. 어린이로 분류되는 0~15세 상품과 대학생부터 사회 초년생을 일컫는 이른바 ‘MZ세대’를 위한 상품을 분리해 판매하라는 금융 당국의 취지가 무색해진 상황이다.
NH손해보험은 아예 “어린이 보험의 새 이름”이라며 0~30세가 가입 가능한 ‘NH굿스타트 건강보험’을 새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금감원이 보도자료를 통해 문제로 지적했던 뇌졸중·급성심근경색에 대해서는 “특약 가입 시 보험금 감액 없이 100% 지급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나손보는 이보다 가입연령을 더 높여 0~35세가 가입할 수 있는 ‘하나로시작하는 건강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DB손보는 7~35세 ‘청춘어람 건강보험’을, KB손보는 0~35세 ‘금쪽같은 희망플러스 건강보험’을 각각 판매한다.
금감원 의도대로 상품을 개정한 곳은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 정도다. 메리츠화재는 가입연령이 16~40세인 ‘내Mom대로’ 상품을 이달 출시했고, 삼성화재의 ‘내돈내삼 1640′의 가입연령은 기존 20~40세에서 16~40세로 낮춰졌다.
어린이보험은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에게 인기를 끌었던 상품이다. 비싼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MZ세대들이 보장범위가 넓고 보험료가 저렴한 어린이보험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름은 어린이보험이지만, 어른에게 인기 있는 상품이라 ‘어른이 보험’이라고도 불렸다. 손해보험사 입장에서도 계약서비스마진(CSM)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는 데다 보험 가입률이 낮은 20~30대 고객을 잡을 수 있어 주력 상품으로 부상한 상황이었다.
생명보험사의 새로운 먹거리라고 평가받는 ‘단기납 종신보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앞서 금감원은 5년·7년납 종신보험 상품 해지환급률이 100%가 넘지 못하게 제한했다. 현장에서 단기납 종신보험이 마치 저축성 보험인 것처럼 둔갑돼 판매되는 행태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보험사들은 5년·7년 시점 환급률을 100% 미만으로 설정하는 대신 10년 시점 환급률을 120%까지 높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10년 시점 환급률에 대한 규제는 없으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KB라이프의 ‘함께 크는 종신보험’은 5년·7년 만기 환급률이 기존 101.3%와 103.6%였지만, 이를 90.3%와 93.6%로 각각 줄였다. 대신 이 상품을 10년 동안 유지할 경우 환급률을 기존보다 5.3~6.6%포인트 높였다.
동양생명은 5년·7년납 종신보험을 10년 동안 유지할 경우 환급률을 기존 108.5%와 119.2%에서 각각 124%와 126%로 상향해 설정했다. KDB생명의 한 7년납 종신보험은 완납 시점 환급률은 99% 수준이지만, 이를 10년 유지하면 122~123%로 높아진다.
보험업계는 규제가 답답하다는 반응이다. ‘죽은 다음에 수억원을 받아봐야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많아지면서 전통적인 종신보험이 저물고 단기납 종신보험이 부각되는 상황인데, 제재를 받다 보니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소비자 오인 부분이 있다면 그렇지 않도록 개정하라는 취지여서 여기에 발맞춰 상품을 개정하고 있다”면서도 “상품 자율성 같은 부분이 (지금보다 더) 인정이 되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