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 한 지점. /뉴스1

류혁(59) 전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이사가 자신의 전(前) 직장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을 출자하면서 새마을금고 사상 최고 대출금액의 2배가 넘는 돈을 대라고 지시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밝혀졌다. 류 전 대표의 거액 출자 명령엔 자신이 일했던 자산운용사에 50억원대 대출 수수료를 챙겨주려는 목적이 있었다. 새마을금고중앙회 실무진들은 5000억원이 넘는 출자에 대해 위험하다며 만류했으나 류 전 대표는 지위를 이용해 이를 묵살하고 출자를 시행했다.

25일 법무부가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류 전 대표 등에 대한 공소장에 따르면, 류 전 대표는 자신이 5년 동안 공동대표로 있던 아이스텀파트너스를 통해 PF 대출을 실행하면서 아이스텀에 86억원 상당의 손해를 입힌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를 받는다. PF 대출 실행 과정에서 류 전 대표는 새마을금고중앙회의 최고 대출금액인 2400억원의 2배가 넘는 5100억원을 출자하도록 지시했다.

류 전 대표는 지난 2020년 6월쯤, 부동산 시행업자 A씨로부터 “숙박시설 개발사업을 위한 PF 대출을 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류 전 대표는 아이스텀을 통해 PF 대출을 받으라고 답했다. 아이스텀은 류 전 대표가 지난 2015년부터 2020년 초까지 유영석(55) 당시 아이스텀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로 일했던 자산운용사다.

류 전 대표 제안으로 A씨와 아이스텀은 새마을금고중앙회에서 아이스텀에 출자하고 아이스텀이 그 돈을 A씨 회사에 빌려주는 PF 대출을 설계했다. 같은 해 12월 4일, 양측은 ‘A씨가 5000억원 PF 대출을 받으면 알선 수수료 50억원을 아이스텀에 지급한다’는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 본격적으로 PF 대출 논의가 이뤄지자 A씨와 유 전 대표는 류 전 대표에게 “차주(A씨 회사)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해달라”고 수시로 청탁했다. 류 전 대표는 아이스텀이 알선 수수료 50억원을 받으면서 동시에 A씨·유 전 대표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래픽=정서희

이 과정에서 류 전 대표는 차주 측과 새마을금고중앙회 실무진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아이스텀의 내부 규정을 회피해 대출을 강행했다. PF 대출은 대출금을 갚는 우선순위에 따라 선순위·중순위·후순위로 나뉜다. 아이스텀은 내부 규정상 선순위 대출만 제공할 수 있다. A씨의 금융 업무를 대리하는 금융주관사는 선순위 대출금 3900억원(금리 5%·취급수수료 1%), 중순위 대출금 1200억원(금리 6%·취급수수료 4%), 후순위 대출 400억원을 설정했다. 아이스텀에 선순위 대출 3900억원을 요청하고 중·후순위 대출금 1600억원은 다른 금융사로부터 마련한다는 계획이었다. 금융주관사는 선순위 대출로 3900억원을 초과해 받으면 돈을 갚을 때 위험하다고 판단해 나머지 금액을 중·후순위 대출로 잡은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제안서를 받은 새마을금고중앙회 부동산금융본부 실무진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새마을금고중앙회 최고 대출금이 2400억원가량이고 사업 위험성도 높아 1700억원만 대출해야 한다”고 류 전 대표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류 전 대표는 오히려 대출금을 늘리라고 지시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류 전 대표는 2021년 3월 9일, 부동산금융본부장과 실무자들을 직접 불러 “중순위 대출 1200억원을 선순위 대출에 편입시킨 5100억원을 선순위 대출 금리 5%로 맞춰 빌려주라”고 압박했다. PF 대출 규모가 5000억원 상당이어야 약속된 알선 수수료가 아이스텀에 지급되기 때문이다. 또한 “A씨에게 유리한 대출 조건을 만들어 달라”는 청탁을 받아들여 금리를 낮췄다.

실무진은 “출자 기업인 아이스텀에 손해를 입히는 결정”이라며 반대했지만 류 전 대표는 이를 묵살했다. A씨 측이 먼저 중순위 대출금 1200억원에 대해 6% 이자와 4% 취급수수료를 내겠다고 제안했지만 류 전 대표가 금리와 취급수수료를 선순위 대출금 수준으로 낮춘 것이다. 결국 아이스텀은 2021년 5월 4일, 5100억원의 PF 대출을 실행했다. A씨 측은 같은 날, 아이스텀에 대출 알선 수수료 56억1000만원을 지급했다. 아이스텀이 1200억원을 기존 중순위 대출 조건의 금리와 수수료로 적용했으면 받았을 86억원에 대해 검찰은 류 전 대표가 손해를 끼쳤다고 보고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서현욱)는 지난달 24일, 류 전 대표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증재·수재·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류 전 대표는 새마을금고중앙회 신용공제 대표이사로서 부동산 PF 대출 업무를 총괄하면서 대출 대주의 이익을 위해 금융 조건을 설계해야 하나 아이스텀에 86억원 상당의 재산상 손해를 가했다”며 기소 이유를 밝혔다. 한편 류 전 대표는 이달 초 새마을금고 신용공제 대표직에서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