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왼쪽)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진 회장과 임 회장은 최근 보험사 인수에 대해 별다른 뜻이 없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각 사 제공

최근 우리금융지주에 이어 신한금융지주도 당장 보험사 인수에 나설 계획이 없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따라 롯데손해보험과 MG손해보험, ABL생명 등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보험사 매각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금융과 신한금융이 공개적으로 보험사 인수전에서 발을 빼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보험사의 몸값이 지나치게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들어 변경된 회계 기준을 도입해 보험사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매물 보험사의 소유자들이 매각 희망가격을 높게 부를 가능성이 커졌다. 이 때문에 지주사들이 실질적인 기업 가치 이상의 부풀려진 가격까지 지불해가며 인수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는 게 보험업계의 해석이다.

◇ 임종룡 "증권사 먼저"…진옥동 "적당한 매물 없어"

21일 보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지난달 말 한 행사에서 비은행 회사 인수 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고 "증권사는 인수를 계속 추진하겠지만, 보험사 인수는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뒤이어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도 지난 13일 영국에서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가진 투자자 행사에서 기자와 만나 "적당한 손해보험사 매물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금융은 금융지주사 중 유일하게 보험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지 않은 곳이다. 신한금융의 경우 손해보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보험업계에서는 두 대형 지주사의 참여로 보험사 인수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현재 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보험사는 KDB생명과 ABL생명, MG손해보험 등이다. 여기에 최근 롯데손해보험도 최대주주인 사모펀드(PEF) JKL파트너스가 매각 주관사 선정 절차에 들어갔다. '큰 손'으로 꼽히는 두 대형 지주사가 발을 뺄 경우 이들 보험사가 후한 가격에 팔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 보험사 상반기 수익 급증은 '실적 착시'

우리금융과 신한금융이 잇따라 보험사 인수에 대해 소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새 회계제도 도입에 따른 '실적 착시'와 이에 따른 '몸값 부풀리기'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진 회장은 임 회장에 비해 보험사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를 더 분명히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현재 매물로 나와 있는 보험사의 가격이 너무 높다"면서 "회계 제도 변경으로 증가한 이익을 그대로 인정하기도 어렵고,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각 사 로고

금감원에 따르면 올해 보험사들은 새 회계 기준인 IFRS17의 도입으로 장부상 순이익이 급증했다. IFRS17에서는 새 보험 계약의 미래 기대 수익을 처음에는 부채로 인식하지만, 계약이 계속 유지되면 시가 기준에 맞춰 부채를 줄인다. 이에 따라 계약 기간이 긴 보장성 보험의 판매 비중이 높을수록 이익이 급증하는 효과를 보게 된다.

현재 매물로 나온 보험사 가운데 금융지주사로부터 가장 큰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 곳은 롯데손보다. 생보사에 비해 성장성이 큰 손보사 매물인 데다, MG손보에 비해 자산 규모와 영업력이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롯데손보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순이익은 65억원에 그쳤지만,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1130억원으로 급증했다. 보험업이 단기간에 실적 변동 폭이 크지 않고 롯데손보가 올해 들어 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될 만한 별다른 호재가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계 기준 변경에 따른 착시로 볼 수 있다.

◇ 최대주주, 몸값 띄우기에 지주사 '철벽'

회계상 순이익이 급증하자, 일부 매물 보험사의 대주주들은 이를 몸값 띄우기에 이용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특히 대주주가 PEF인 경우 차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입 당시 지불한 돈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의 희망 가격을 받으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롯데손보는 예상 매각 가격이 2조7000억원에서 3조원 수준으로 형성될 것이라는 전망에 지난 18일부터 이틀간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했다. 롯데손보 매각은 이제 막 시작한 단계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나온 매각 추정가가 결국은 대주주인 JKL파트너스가 희망하는 수준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JKL파트너스는 지난 2019년 롯데손보를 3734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36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현재 77%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예상 가격대로 매각이 이뤄질 경우 약 5년 만에 2조원 넘는 차익을 챙기게 되는 셈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우리금융과 신한금융이 잇따라 공개적으로 보험사 인수에 선을 그은 것은 '최대어'로 꼽히는 롯데손보의 몸값 띄우기에 장단을 맞춰주지 않겠다는 뜻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MG손보나 ABL생명 등은 지주사가 관심을 보일 정도의 대형 매물은 아니다"라며 "롯데손보의 제시액이 적정 수준으로 내려올 경우 지주사들이 뜻을 바꿔 인수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