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 신한은행장이 지난 7월 14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23년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신한은행 제공

신한은행에서 판매된 211억원 규모의 무역금융펀드가 환매 중단됐다. 이 펀드는 싱가포르 회사인 로디움의 매출채권에 투자한 펀드다. 로디움의 매출채권은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라임·피델리스 등의 사모펀드에서도 투자한 매출채권이다. 신한은행은 환매가 중단된 해당 펀드 투자자에 대해 사적화해를 통한 손실 보상에 나섰다. 사적화해는 금융회사와 소비자가 직접 화해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이다.

20일 국회 정무위원회로부터 입수한 신한은행의 환매 중단 펀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현대 로디움(RHODUIM) 전문투자형 사모투자신탁8호'의 환매 중단에 따라 사적화해 형식으로 투자자 배상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 로디움 무역금융펀드는 현대자산운용에서 만든 펀드로 2018년 12월에 설정돼 신한은행을 통해 211억원어치가 판매됐다. 이 펀드의 투자자는 법인 28곳(207억원), 개인 2명(4억원)이다. 이 펀드는 싱가포르 무역회사인 로디움의 매출채권에 투자했다.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켜 문제가 된 라임 크레딧인슈어드(CI) 펀드, 피델리스 싱가포르 펀드 등의 무역금융펀드도 로디움의 매출채권에 투자했다. 현대 로디움 무역금융펀드는 매출채권 부실에 따라 지난 2021년 6월 환매가 중단됐다.

그래픽=정서희

신한은행은 해당 펀드의 자금 회수가 계속 어려워지자 지난 3월 이사회를 열고 사적화해를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사회에서 결정한 손실보상 비율은 30~80%다. 현재까지 진행된 평균 보상비율은 법인 77.46%, 개인 77.43%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매출채권에 투자한 무역금융펀드가 2년 전 환매가 중단됐고, 환매 중단이 된 뒤에도 만기를 연장해서 운영을 해오고 있었다"라며 "소비자 보호를 위해 사적화해를 진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이 사적화해를 진행하면서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한 투자자는 아직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한은행은 불완전판매 요인은 없으나, 소비자 보호를 위해 사적화해를 통한 손실 보상에 나선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선(先) 보상 이후 해당 펀드에 대한 보험금 청구를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계획이다. 현대자산운용이 보험사를 대상으로 해당 펀드 투자금 회수를 위한 보험금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상환이 안 되다 보니 투자자별로 사적화해 비율에 따라 보상이 진행되고 있다"라며 "불완전판매는 아니지만, 보험 등을 통해 투자자의 돈을 지급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면 고객의 피해가 있으므로 우선 비율대로 (투자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금융권에서는 현대 로디움 무역금융펀드의 환매 중단 이후 상당 시간이 흐른 뒤 사적화해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취임 초반에 사모펀드에 대한 리스크를 털고 가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해당 펀드의 사적화해를 결정한 시점은 지난 3월로, 정 행장의 취임 이후다. 정 행장은 신한은행의 경영 슬로건을 '고객 중심 밸류, 기본에 충실한 은행, 신뢰로 도약하는 미래'라고 제시하면서 "사모펀드 사태 등 고객에 대한 신뢰가 많이 훼손된 부분들이 있었다"라며 "고객의 신뢰를 빨리 회복해야 되겠다는 것이고, 이러한 기반 아래 은행의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 본점. /신한은행 제공

다만, 펀드 투자에는 자기책임 원칙이 있기 때문에 신한은행이 소비자 보호만을 이유로 손실 보전에 나서는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보내는 시선도 있다. 자본시장법상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투자자가 입은 손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후에 보전해 주는 행위는 금지된다. 대신 해당 법에서는 위법행위 여부가 불명확한 경우 사적화해의 수단으로 손실을 보상하는 행위를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적화해에 직접 금감원이 개입하진 않는다"라며 "다만, 사적화해는 충분한 법률적 검토를 통해 법적 문제가 없을 때, 투자자별 배상이 형평에 어긋나지 않게끔 진행해야 한다"라고 했다.

신한은행은 지난 2017년부터 올해 8월까지 7333억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판매했으나, 환매 중단 등의 이유로 자율조정·사적화해를 통해 4168억원의 손실을 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