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규모 기준 국내 6위 저축은행인 애큐온저축은행이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올해 들어 실적이 눈에 띄게 악화한 데다, 금융 당국의 중징계를 받아 신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제동이 걸린 것이다. 지난 5월 대표이사를 교체했지만, 혼란을 조기에 수습할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애큐온저축은행은 국내 10위권 저축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사모펀드(PEF)가 보유한 곳이다. 지난 2017년 미국계 PEF인 JC플라워즈가 HK저축은행을 인수해 애큐온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2019년 홍콩계 PEF였던 베어링PEA가 새 주인이 됐다.
베어링PEA는 올해로 인수 5년째를 맞아 이르면 내년부터 차익 실현에 나서야 할 상황이지만, 최근 실적 부진 등으로 매각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상반기 적자 전환, 건전성 지표도 악화
18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애큐온저축은행은 올해 상반기에 32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317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던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적자로 전환한 것이다. 금리 인상 등으로 이자비용과 채권 평가 손실이 늘면서 415억원에 이르는 영업손실도 기록했다.
자산 건전성 지표는 눈에 띄게 악화했다. 연체대출 비율은 지난해 상반기 1.1%에서 올해 상반기에는 3.93%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고정이하 여신 비율도 3.94%에서 5.95%로 올랐다.
고정이하 여신 비율은 총여신에서 고정 등급 이하의 부실 여신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이 수치가 상승하면 부실채권 증가로 자산 건전성이 악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정 이하 여신인 고정, 회수 의문, 추정 손실 등은 모두 부실채권으로 간주한다.
여기에 총자산이익률이 지난해 상반기 1.4%에서 올해는 -0.12%로 하락하는 등 수익성 지표도 악화하는 추세다.
애큐온저축은행의 실적과 각종 지표가 올해 들어 악화하고 있는 것은 PEF 인수 후 최근 3년여간 공격적으로 확대했던 영업자산이 최근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부실화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애큐온저축은행의 최근 3년간 대출채권 증가율은 평균 41%로 업계 평균치인 21%와 비교해 월등히 높았다. 지난해 말 영업자산 규모는 업계 6위에 해당하는 5조4000억원을 기록, 모기업인 애큐온캐피탈의 영업자산(3조600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 신임 CEO '소방수' 역할에 의문 부호
애큐온저축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실적과 지표가 악화하자, 대표이사를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2019년부터 3년여간 회사를 이끌며 회사 규모를 키웠던 이호근 전임 대표이사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고, 지난 5월 김정수 애큐온캐피탈 부사장이 신임 대표로 취임했다.
그러나 저축은행업계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소방수' 역할에 적합한지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김 대표의 주요 이력이 주로 디지털 신사업 추진 분야로 특화돼, 실적 부진과 건전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애큐온저축은행의 문제를 해결하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 대표는 신한카드에서 디지털사업본부장으로 일하며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카드와 블록체인 연계 서비스 개발, 페이팔과의 제휴 등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애큐온저축은행 합류 이후에도 디지털혁신부문장을 맡아 모바일 앱 개편 작업을 지휘하는 등 디지털 서비스 관련 분야에서 이력을 쌓았다
게다가 김 대표는 금융 당국의 중징계로 규제를 받고 있는 에큐온저축은행의 영업력을 되살려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월 애큐온저축은행과 SBI저축은행에 대해 불법 작업대출에 나섰다는 이유로 중징계인 '기관 경고' 처분을 내렸다. 작업대출이란 대출 자격이 없음에도 서류를 조작해 불법으로 돈을 빌려주는 행위를 말한다. 기관 경고를 받을 경우 1년간 신규 지점을 열 수 없고 2년 동안 할부금융업 등에 나설 수 없다. 이번 징계로 에큐온저축은행은 신사업을 추진하거나 영업망을 늘리기가 어려워진 셈이다.
◇ 모기업 지원도 한계…대주주 PEF도 골머리
애큐온저축은행의 모기업은 지분 100%를 소유한 애큐온캐피탈이다. 애큐온캐피탈은 애큐온저축은행의 유동성이 악화하자, 지난 5월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했다. 그러나 애큐온캐피탈 역시 최근 실적 부진을 겪고 있어 더 이상의 추가 자금 수혈은 어려운 상황이다.
애큐온캐피탈은 앞서 지난 2021년에도 에큐온저축은행에 대해 5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주택 분양 시장의 침체로 주력 사업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등에서 실적이 단기간에 개선되기 어렵기 때문에 추가 자금 지원의 효용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김영훈 한신평 수석연구원은 "모기업보다 외형이 큰 애큐온저축은행에 대한 자금 지원 부담이 커진 것은 애큐온캐피탈의 재무 안전성에도 부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애큐온캐피탈의 대주주인 베어링PEA는 이르면 내년부터 매각 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관측된다. 애큐온캐피탈뿐 아니라 외형이 더 큰 자회사인 애큐온저축은행의 실적 부진으로 인수 후보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