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대출로 연명하는 한계기업(일명 좀비기업)이 증가하고 있지만, 총선 등 정치 현안에 밀려 구조조정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기업계와 금융권에서 나온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가 맞물려 한계기업이 줄도산할 경우 위험이 금융권은 물론 경제 전반에 전이될 수 있다.

13일 한국금융연구원이 국내 코스피·코스닥·코넥스·외감법인 중 비금융 기업 3만5000여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부도 확률이 10%를 초과하는 부실기업이 4년 만에 2.3배 증가했다. 분석 대상 기업 총부채는 2018년 1719조원에서 지난해 2719조원으로 4년 동안 58% 증가했다. 부실기업의 부채는 같은 기간 91조원에서 213조원으로 2.3배(134%) 늘었다. 부실기업 부채가 기업 부문 총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2018년 5.3%에서 지난해 7.8%로 증가했다.

대출로 연명하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자 파산을 선택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대법원 통계월보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전국에서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건수는 724건이다. 이는 전년 동기(452건)보다 60.2% 급증한 규모다. 상반기 기준 관련 통계 작성 시기인 2013년 이후 역대 최대치다. 평년에 월별 60~70건에 달하던 파산신청 건수는 올 3월부터 120~130건씩 발생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최근 한계기업을 중심으로 기업 신용위험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 원자잿값 인상 등이 겹치면서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금융 당국의 판단이다.

한계기업이란 영업이익으로 대출 이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 3년 이상 지속된 기업을 말한다. 금융 당국은 이런 한계기업이 은행 등 금융권에 미칠 영향 등을 자세히 점검하고, 구조조정 제도 개선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제공

그러나 금융권에선 내년 총선 전까지는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 제도 개선을 위해선 정부와 국회의 공조가 필요한 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 구조조정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구조조정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19를 지나면서 지난해가 한계기업 구조조정의 적기였으나, 시기를 놓친 측면이 있다”며 “총선 등 여러 정치 이슈가 맞물려 당분간 구조조정을 진행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계와 금융권은 한계기업 증가를 한국 경제를 위협할 뇌관으로 꼽고 있다. 정부 지원금이나 금융 대출로 연명하는 한계기업이 늘어날수록 경제 성장세는 둔화한다. 이들 기업이 파산할 경우 금융사로 부실이 전이돼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준다.

박준호 명지대 경제학 교수는 “1990년대 일본은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음에도 은행 및 정부의 금융 지원을 통해 부실기업을 생존시켰다”며 “이런 좀비기업들이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고 장기적 침체를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했다.

기업계에서는 기업별 상황에 맞는 다양한 구조조정 정책을 마련해 한계기업 옥석 가리기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팬데믹에 대응한 금융조치가 완료되면 도산기업이 급증할 수 있다”며 “중소기업이 파산절차로 가기 전 다양한 방식으로 채무조정이 가능한 멀티도어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