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7일 서울 시내 한 새마을금고 지점에 금고별로 1인당 5000만원까지 예금자보호가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연합뉴스

올해 들어 급물살을 탔던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논의가 ‘현행 유지’로 가닥이 잡히는 분위기다. 당초 우리나라 경제 규모나 국민 자산이 증가한 점 등을 고려해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듯했으나, 경제·금융정책 수장들이 시장 혼란과 소비자 부담 전가 등을 이유로 신중론으로 기울면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예금보호한도 상향 조정은 시급한 사안이 아니며 시기상조라는 데에 최근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예금자보호한도가 5000만원에서 상향될 경우 저축은행이나 상호금융 등 2금융권으로 뭉칫돈이 몰리며 시장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예금자보호한도란 은행 등 금융사가 파산해 고객에게 예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됐을 때 정부(예금보험공사)가 대신 지급하는 제도로, 원금과 이자를 합쳐 한 금융사당 1인 5000만원까지 보호가 가능하다. 실리콘밸리은행(SVB) 뱅크런(bankrun·대량 자금인출) 사태를 계기로 한도 상향 논의가 재점화됐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예금자보호한도의 적정 수준과 금융사별 예금보험료 비율 등을 검토하기 위해 외부업체에 연구 용역을 맡겼다. 연구용역보고서는 8월 말 마무리됐다.

TF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10월 국회에 보고할 최종 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최종 보고서는 정부가 작년 10월 국회에 중간보고한 연구 보고서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한 의원실이 지난달 29일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연구용역보고서 결과 브리핑을 받았는데, 중간보고 당시 냈던 자료를 그대로 보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행 유지 ▲단계적 상향 ▲일부 예금별 한도 적용 등의 방안을 비교 검토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한 번에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에 따른 소비자 실익이 크지 않다는 판단도 신중론에 무게를 실었다. 예보는 예금자보호기금(부보예금)을 조성하기 위해 각 금융사 예금 잔액의 0.08~0.4%를 보험료(예보료)로 걷는데,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이게 되면 금융사가 내야 하는 보험료도 높아진다. 이는 곧 대출금리 인상 등 금융 소비자 부담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에 5000만원 이하 예금을 보유한 고객 비율이 98%가량인 상황에서 한도를 높이면 소수의 고액 자산가만 혜택을 본다는 관측도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2023년 국감 이슈 보고서’에서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해 혜택을 받는 예금자가 1~2%에 불과해 실효성이 없다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관건은 국회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올라온 예금자보호 관련 개정안은 11개다. 이중 절반 이상인 7개 개정안이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은 매번 총선 때마다 등장하는 의제”라며 “여야 가릴 것 없이 표를 의식한 결정을 하지 않겠냐”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포퓰리즘 성격이 짙다”며 “한도 상향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정부 입장을 청취한 뒤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그래픽=손민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