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액 776억원에 달하는 IBK기업은행의 통상임금 소송이 공전하고 있다. 이 소송은 2014년 6월 시작돼 올해로 9년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지난 2019년 5월 대법원이 최종 선고를 돌연 연기한 뒤 아직 재판이 열리지 않고 있다. 기업은행은 소송에서 패할 경우 밀린 임금 776억원뿐만 아니라 연 5~6%에 해당하는 지연 이자까지 지급해야 한다.
30일 금융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기업은행 통상임금 소송을 맡은 대법원 민사1부는 2019년 5월 16일 최종 선고를 연기한 뒤 현재까지 재판을 열지 않고 있다. 이 소송은 2014년 6월 전·현직 기업은행 노동자 1만1202명이 회사를 상대로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달라'며 시작됐다. 소송액은 776억원에 달한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최종 선고 하루 전날 양측에 선고기일 연기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은행 통상임금 소송은 결과에 따라 다른 기업 소송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주목받았다. 기업은행은 2016년 1심에선 패하고 2017년 2심에선 승소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재직 조건이 붙은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었다. 통상임금 판결의 핵심은 '고정성' 여부다. 통상임금은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근로의 대가로 받는 임금을 말한다. 통상임금이 법정 다툼으로 이어지는 것은 연장근로 등 각종 수당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연장근로수당의 경우 보통 통상임금의 1.5배 이상으로 책정되는데,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그만큼 받을 수 있는 수당이 늘어나게 된다. 고정성은 재직 등 부가적인 조건 없이 근로자에게 지급이 확정된 임금을 의미한다. 근로자가 당장 내일 회사를 관두더라도 그동안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는 임금은 고정성이 충족됐다고 본다.
2심 재판부는 상여금에 '지급일 현재 재직한 근로자에게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으면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도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판결을 앞두고 하급심에서 재직 조건이 붙은 상여금도 통상임금으로 확대 해석하는 판결이 계속 나오자 대법원이 판단을 잠정 보류한 것이다.
최근 법원 판결 경향은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 통상임금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금감원 전·현직 노동자 1708명이 금감원을 상대로 제기한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서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이 소송은 1심에선 금감원, 2심에선 근로자가 각각 승소했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2015년 "정기상여금은 소정의 근로를 제공하기만 하면 그 지급이 확정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은 이유를 설명했다. 대법원 역시 2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올해 7월 서울중앙지법도 같은 이유로 HJ중공업(옛 한진중공업)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근로자 승소 판결을 했다. 같은 달 서울고등법원은 수서고속철도(SRT) 승무원의 실적 주행거리에 따라 지급되는 승무수당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결했다. SRT 통상임금 소송의 경우 1심 재판부는 "승무수당은 소정근로와는 무관하게 지급됐으므로 통상임금에 포함될 수 없다"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기업은행이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할 경우 소송금액 776억원에 연 5~6%에 해당하는 지연이자까지 지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은 소송이 제기된 날로부터 판결 선고가 나기 전까지 원금에 연 5~6%의 이자를 부과하고 판결 선고 이후부터 모두 갚는 날까지 연 15%의 지연이자를 적용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약 1000억원에 달하는 돈을 원고에게 지급해야 할 전망이다.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금감원 소송의 경우 대법원이 통상임금의 범위를 기존 판결 경향보다 넓게 해석한 첫 사례다"라며 "기업은행 재판의 1심과 2심 판단이 갈린 것은 '일할 규정' 때문이었는데, 금감원 재판부는 일할 규정과 상관 없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봤다"고 했다. 기업은행 입장에서는 불리한 판결이라는 얘기다.
일할 규정은 쉽게 말해 매달 20일이 급여 지급일인 회사에 근로자가 10일까지 근무하고 퇴사했다면 10일 치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한다는 규정이다. 반면 상여금은 근로자가 지급일에 회사를 다니지 않을 경우 받을 수 없는 돈이다. 과거 재판부는 일할 규정에 따라 '상여금은 고정성이 없다'고 판단했으나, 금감원 재판부는 이와 상관 없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봐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