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은행권의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에 나이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대신 당국은 대출자(차주)가 상환능력 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도록 50년 만기 상품을 포함해 모든 주담대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계산식 개편을 추진한다. DSR은 대출자의 연간 소득 대비 갚아야 하는 대출 원리금 비율이다.
24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50년 만기 주담대의 가입 연령을 제한하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대신 은행의 DSR 심사 강화와 DSR 계산식 개편을 통해 50년 만기 주담대의 급증을 억제하기로 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50년 만기 주담대의 가입 나이를 제한하는 방안은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책금융이 나이 제한을 둔다고 해서 민간금융에서 똑같이 제한을 두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일괄적으로 가입 연령의 상한선을 두지는 않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앞서 금융 당국은 가계부채 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50년 만기 주담대가 DSR 규제를 피해 가는 측면이 있는지 점검하기로 했다. 최근 가계부채가 증가하는 주요 요인으로 단기간 급증한 50년 만기 주담대를 지목한 것이다. 은행권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취급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50년 만기 상품 취급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50년 만기 주담대가 DSR 규제를 우회한다는 지적을 받는 것은 대출자가 같은 조건에서 만기만 50년으로 선택하면 빌릴 수 있는 대출 금액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현행 대출 규제에서 대출자는 만기를 장기로 설정할수록 매년 상환해야 하는 원리금이 줄어들어 상환 능력 이상의 대출 금액을 빌릴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연 소득 5000만원인 사람이 금리 연 4.45%로 30년 만기 주담대를 이용하면 최대 3억3000만원까지 대출을 실행할 수 있다. 그러나 50년 만기 상품을 선택하면 대출한도는 4억원까지 늘어난다.
금융 당국은 애초에 실무 차원에서 50년 만기 주담대의 상승폭을 억제하는 방안으로 가입 연령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만 34세 이하 청년’이라는 가입 조건을 내건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50년 만기 정책 모기지의 사례를 참고했다. 하지만 당국 내부에서 초장기 주담대라는 이유로 일괄적으로 가입 연령을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가입 연령 제한 방안은 채택되지 않았다. 또,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의견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금융 당국은 은행이 자율적으로 50년 만기 상품의 가입 연령을 제한하는 것은 막지 않기로 했다. 당국은 은행이 스스로 나이를 제한하거나 연령에 대한 위험 요인을 관리하기 위해 대출 심사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므로 개입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금융 당국의 지도가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 은행권에서는 선제적으로 나이 제한이나 대출 심사 제도 개선 등의 방안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가입 연령 제한에 대한 당국의 지도가 없더라도 은행이 자체적으로 나이에 따른 리스크를 심사에 반영하거나 나이를 제한하는 방안을 살펴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했다.
금융위는 장기적으로 DSR 계산식에 변화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50년 만기 상품뿐만 아니라 모든 주담대가 상환능력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DSR 산식을 개선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만기가 30년이나 40년은 괜찮고, 50년인 상품은 안 된다’라는 식의 접근은 안 된다”라며 “DSR 계산식을 통해 상환능력이 확실히 반영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라고 했다.
금융 당국은 은행권과 50년 만기 주담대 급증에 따른 대책을 논의한 뒤 최종 방안을 조만간 발표한다. 또 다른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은행권과 소통하고 있는 단계로 최대한 빨리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