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붙은 주택담보대출 현수막. /연합뉴스

은행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상품 판매를 잠정 중단하거나 나이 제한에 나서고 있다. 금융 당국이 가계부채 주범으로 50년 만기 주담대를 지목하자 은행권이 선제적 조치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BNK경남은행은 오는 28일부터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를 잠정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남은행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연령대별 사용 목적을 분석하고 나이 제한을 검토한 후 판매를 재개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판매 재개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

Sh수협은행은 이달 안으로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 가입 연령을 정책모기지 상품인 특례보금자리론과 같이 만 34세 이하로 제한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협은행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정책모기지 상품과 동일하게 나이를 맞추어 판매하도록 결정됐다”고 했다.

다른 시중은행도 50년 만기 주담대에 나이 제한을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판매 중단에 대해 결정된 바가 없다”면서도 “연령 제한 등 대출 조건 변경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대구은행 관계자는 “구체적인 일정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나이 제한을 두려고 준비 중이다”라며 “정책모기지 상품과 같이 만 34세 이하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나이 제한 등 다양한 부분에 대해 검토 중이다”라고 했다.

판매 중단을 검토 중이거나 출시 시기를 조정하는 은행도 있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판매 중단에 대해 검토 중인 단계다”라면서도 “다만 당장 판매 중단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은행 관계자는 “기존에는 8월 안에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내놓으려고 했으나 출시 일정에 대해 재검토하게 됐다”고 전했다.

NH농협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 판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NH농협은행은 내부적으로 설정한 2조원의 한도가 이달 중으로 소진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출시 두 달 만에 농협은행이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를 중단한 것에 대해 금융 당국의 눈총에 선제적 조치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시내 주요 시중은행 가계대출 관련 현수막. /뉴스1

앞서 Sh수협은행은 지난 1월 은행권 최초로 주담대 최장 만기를 기존 40년에서 50년으로 연장했다. 이후 시중은행에서는 지난달부터 잇달아 5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했다. 은행권에서 주담대 만기를 50년으로 늘린 상품을 내놨던 것은 만기가 긴 상품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주담대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적용돼 차주(돈 빌린 사람)가 매년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의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한다. 하지만 원금을 갚는 기간이 50년으로 늘어나면 매년 갚아야 하는 원금이 줄어들어 그만큼 대출 한도가 늘고 월 상환액이 줄어든다.

최근 은행권에서 출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해 은행권이 연령 제한이나 판매 중단에 나서려 하는 것은 금융 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50년 만기 주담대가 DSR 규제를 우회해 가계부채를 늘리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KB국민·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 4대 은행의 지난달 50년 만기 주담대 취급액은 1조2811억원으로 출시 한 달 만에 1조원을 넘겼다. 가계부채도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8조1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지난 17일 은행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50년 만기 주담대에 대해 DSR 산정이 적정했는지 살펴보고 제도 개선이 필요하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10월까지 은행 현장점검을 실시하겠다고도 했다. 당국은 50년 만기 주담대와 관련해 가입 연령 제한 등 가이드라인을 검토하고 발표 여부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50년 만기 주담대 도입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이끌었다는 금융 당국 지적에 대해 선후 관계가 뒤바뀐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대출은 부동산 시장과 맞물려 주택을 찾는 수요에 따라 증감을 보인다. 최근의 가계대출 증가는 부동산 시장이 회복되며 늘어난 것이지,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 출시가 가계대출 증가를 이끌고 있진 않다는 것이다.

50년 만기 주담대에 나이 제한을 두는 것이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 차주가 50년 만기 주담대를 받아도 만기까지 해당 대출을 유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집값이 오르면 기존 주택을 팔고 대출을 상환하는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이다. 또 50년 만기 주담대에만 나이 제한을 두는 것도 자의적이란 비판이 나온다. 40년, 30년 등 다른 주담대 만기 기간에도 동일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부분 차주가 50년 만기 주담대를 받는다고 해도 한 집에 50년간 살면서 이자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만 34세로 나이 제한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의문이 든다”라며 “또 은행이 50년 만기 주담대를 취급해도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으면 주담대 수요가 줄어드는 만큼 가계대출의 근본적인 증가 원인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