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정비 업소(카센터) 화재 사고는 심심찮게 나잖아요? 경찰도 원인이 자연발화라는데, 아무리 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카센터 주인에게 현장 폐쇄회로(CC)TV를 달라고 하니 거절하더라고요. 이때 ‘아, 의도적으로 불을 냈구나’라고 심증을 굳혔습니다.”
흔한 카센터 화재 사고였다. 2층짜리 건물의 작업공간은 다 탔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조사 결과 이 사건이 의도적인 방화가 아닌 자연발화로 보고 무혐의로 종결했다. 화재로 건물 및 집기 등 재산 피해를 본 강원 강릉시의 한 카센터 주인 K씨는 화재 보험금으로 약 3억원을 수령했다.
그러나 A손해보험사 보험사기 특별조사팀(SIU·Special Investigation Unit) 생각은 달랐다. 2억7000만원 규모의 화재 보험금 지급을 검토하면서 살펴보니, 카센터 주인이 일부러 불을 낸 것으로 볼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한 것이다.
우선, 보험료 납입 행태가 비정상적이었다. K씨는 불이 나기 몇 개월 전 A손보사의 화재보험에 가입했다. 한 달치 보험료 27만원을 낸 그는 이후 3개월 동안은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 그러던 K씨는 갑자기 3개월 치 보험료를 한 번에 내고 보험계약을 부활시켰다. 화재가 발생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다음으로, 현장에서 발견된 우편물이 힌트를 줬다. 화재 현장에는 강릉시청의 수도 단수 예고서와 채무를 독촉하는 내용의 편지가 있었다. 카센터 곳곳에는 압류장이 붙어 있었다. 알고 보니 K씨는 카센터 영업을 접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하수도사용료·전기요금조차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대료 역시 밀릴 수밖에 없었다. K씨는 보증금 없이 월 100만원의 임대료를 지불하는 조건으로 건물주와 계약을 했다. 하지만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1년이 넘게 월세를 내지 못했다.
결국 K씨는 임대료 미납 사유로 건물주와 소송까지 진행해 패소했고, 건물 인도 및 정비 공장 내 비품에 강제 집행을 앞두게 됐다. 사실상 카센터 영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공장을 비워줘야 할 시점에 갑자기 불이 나게 된 것이다.
다만 물증이 없어 심증에 불과했다. A손보사 SIU는 K씨에게 사건 현장 CCTV를 요청했다. 그러나 K씨는 이를 거부했다. 이 점이 K씨가 고의로 불을 피웠다는 심증을 굳혔다.
A손보사 SIU는 화재 당시 CCTV 자료가 경찰에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2019년 4월 자료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강릉경찰서 지능팀에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혐의로 재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이렇게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방재시험연구소와 분석에 들어갔다.
자료 분석 결과와 SIU의 조사에 따라 화재 당시 현장을 재구성해 보면 이렇다. K씨는 카센터에 불이 난 당일 전기 사용 시간을 제어할 수 있는 디지털 타이머를 구매했다. 그는 이 타이머를 멀티탭에 꽂고, 이 멀티탭에 연결한 히팅건(공업용 열풍기)을 장갑 등 인화물질이 많은 선반에 놓았다.
히팅건은 플라스틱 성형이나 페인트 제거 등에 사용되는 전동공구로, 수백℃의 뜨거운 열풍을 쏜다. K씨가 카센터를 떠난 밤, 멀티탭에 연결된 디지털 타이머 스위치가 작동하며 전원이 공급됐다. 멀티탭에 꽂혀있던 히팅건도 이때 작동했다. 1분 37초가량이 지난 뒤 불이 났다.
A 손보사 SIU는 화재보험협회 방재시험연구원에서 유사 실험도 진행했다. K씨가 사용한 히팅건과 유사한 제품을 골라 카센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에어필터와 엔진오일, 기름장갑 및 목장갑 등에 불이 붙는지를 확인했다. CCTV 속 상황과 비슷하게 1분 30여초만에 불이 붙었다.
이런 증거를 제출받은 강릉경찰서는 2020년 3월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위반, 현주건조물 방화죄 등 혐의를 받는 K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은 K씨의 주거지 압수수색 등 보강수사를 통해 K씨를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위반, 일반 건주물 방화로 2020년 12월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K씨에게 징역 4년을 구형한 상태다. K씨는 재판에서 “타이머 스위치를 실수로 조작해 불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