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서울 시내 은행 모습./뉴스1

금융 당국이 우체국이나 보험대리점 등에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은행 대리업' 제도 도입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최근 내부통제체계를 갖춘 은행에서도 횡령, 금융실명법 위반 등 잇단 금융사고가 발생하는 가운데 은행 대리업이 도입되면 금융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빈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점포 폐쇄에 따른 금융 소비자 불편과 리스크 관리의 균형점을 찾은 은행 대리업 도입 방안을 도출해 낼 계획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은행권의 점포 폐쇄 가속화에 따라 소비자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우체국 등에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은행 대리업은 은행의 업무를 은행 이외의 자가 대리 수행하는 것이다. 현재 은행의 예·적금 수신과 대출 등 본질적 업무를 외부에 위탁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은행 대리업 제도 도입을 위해선 업무위탁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 금융 당국은 업무위탁 제도 개선 방안으로 내부통제 업무를 제외한 은행의 본질적 업무에 대한 위탁을 허용하는 방안과 본질적 업무를 핵심·비핵심요소로 분류해 비핵심요소만 위탁을 허용하는 방안을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은행대리업 도입 방향은 복수 은행의 업무를 대리할 수 있도록 1사 전속주의 적용을 배제하되, 은행업무 대리에 따른 리스크 등을 고려해 영업채널 허용 범위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 대리업 제도가 시행되면 은행 이외에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많아지면서 소비자의 편익이 증진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따른 은행권의 경쟁 촉진도 예상된다.

다만, 금융 당국은 은행 대리업 제도 도입에 따른 잠재적 리스크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내부통제 체제를 갖춘 은행권에서도 최근 횡령이나 실명법 위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등의 금융사고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업무만을 대행하는 은행 대리점이 은행 수준의 내부통제를 갖추는 것은 불가능해 리스크 관리에 허점이 생길 수 있다.

그래픽=손민균

은행 대리업 도입의 부작용 중 하나는 은행이 소매상점 등을 대리인으로 활용하게 될 경우 자금세탁, 테러 자금 조달 방지 등의 규칙 준수를 모니터링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금융상품에 대한 불완전 판매 가능성도 커져 금융회사의 업무 위탁이 일부 수탁사에 집중될 가능성도 생긴다. 만약 대리인이 사기, 해커 공격 등으로 은행과 대리인 중간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한다면 이는 은행의 손실로 기록된다.

또한, 은행 대리업이 시작되면 금융시장 내 경쟁이 격화되고 금융회사와 수탁사 간 상호 연계성 강화에 따른 잠재적 리스크 전이 가능성도 있다. 상대적으로 작고 외곽에 있는 대리인의 경우 손님이 요구하는 충분한 현금 보유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금융 거래에서의 복잡한 현금 관리 경험 부족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 발생 가능성도 있다.

고은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은행 업무 대리에 따른 잠재적 리스크 통제를 위한 관련 규제 정비 및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라며 "금융 산업 경쟁심화 체제에서 은행들의 새로운 채널 확보를 위한 대리인의 수요가 점차 증가함에 따라 은행 대리업자의 진입규제, 영업행위규제 등의 규제 정비를 모색해야 한다"라고 했다. 고 연구위원은 "은행 등의 위탁자 관리·책임을 강화하고 금융소비자 보호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업무 위탁·대리기관 확대로 발생할 수 있는 시스템 리스크를 통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은 금융 접근성 강화와 부작용의 균형을 맞춰 은행 대리업의 도입을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은행 대리업 도입 방안은 금융 당국이 예고한 9월까지 마련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은행 대리업 도입은) 현재 검토가 진행 중이나 3분기 내에는 (발표는) 어려울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