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잇따라 '선(先)심사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상품 가입에 투입되는 시간을 줄여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겠다는 목적에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교보생명과 KDB생명, 동양생명 등에 이어 신한라이프도 최근 선심사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사전 동의가 완료된 고객을 대상으로 보험 가입 가능 여부를 신속히 알 수 있도록 가입설계 단계에서 언더라이팅(보험 가입 심사) 결과를 제공한다. 언더라이팅은 고객에 관한 각종 위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보험 계약 인수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통상적으로 고객이 생보사의 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선 2번의 만남을 거쳐야 한다. 우선 첫 대면에서 가입설계 및 청약·알릴 의무·보험료 입금 등을 진행한다. 이후 언더라이팅 절차를 거쳐 두 번째 만남에서 최종 가입을 결정한다. 문제는 많은 시간을 들여 상품 설명을 듣고 청약서를 작성해도 언더라이팅 과정에서 인수가 거절되면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심사 시스템을 도입하면 이 과정에서 걸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개인정보 동의 등 간소한 절차만으로 소비자의 보험 가입 여부를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와 상담사는 고지 정보와 보험금 지급 이력을 근거로 보험계약 인수 여부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지난 2월 선심사 시스템을 도입한 동양생명은 한국신용정보원에서 정보를 받아 보험금 지급 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에게 선심사 동의를 받으면 보험 심사 담당 직원(언더라이터)의 도움 없이 질병 관련 이력을 확인하고 청약할 수 있다. 기존에는 언더라이터에게 문의하고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삼성생명은 올 4월 빅데이터를 활용한 가상 언더라이팅을 도입했다. 프랑스 재보험사인 스코르(SCOR)가 개발한 빅데이터 분석 프로그램으로 삼성생명의 보유계약 정보를 활용해 고객의 고혈압, 갑상선 질환 등 과거 앓았던 질환에 대한 인수 여부를 예측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만성질환자나 고령 고객들에게 더 많은 가입 기회를 제공하는 길이 열렸다.
손해보험업계 역시 최근 몇 년 간 선심사 시스템을 도입해 왔다. KB손해보험은 2021년 자동차보험 언더라이팅에 AI 머신러닝(기계학습) 기법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언더라이터가 직접 고객이 제출한 사진을 보고 배달통 장착 여부를 확인해 운행용도 심사를 진행했지만, 현재는 박스 형태의 배달통 장착 여부를 AI가 알아서 찾아내 이륜차의 운행 용도를 판단한다.
현대해상은 지난해부터 가상 언더라이팅을 간편 보험 상품 심사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가상 언더라이팅은 현대해상이 보유한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혈압, 대장용종, 갑상선질환 등 질환의 인수 여부에 따른 담보 유형별 예상 손해율을 산출하는 시스템이다. 빅데이터로 분류한 질환에 대해 안정성이 검증됐다고 판단되면 자동으로 인수가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 포화 상태에 이른 보험 시장에서 한 명의 고객이라도 더 확보하려면 자격이 되는 고령자·유병력자의 가입 문턱을 낮춰야 한다"면서 "AI 등 여러 기술을 활용하면 손해율(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