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 을지로4가에 있는 하나은행 하트원을 찾았다. 입구 왼편에 위치한 계단을 타고 올라가 2층에 들어서니 70여점 정도의 미술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중견 작가 장욱진, 오승우, 김창열부터 신진 작가 김미루, 오유경, 백승우까지. 작가마다 팝 아트, 설치미술, 극사실주의, 추상표현주의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품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작품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가운데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빛을 주제로, 눈으로 보이는 빛과 그 너머 보이지 않는 빛을 표현하고 있었다. 전시 주제는 ‘See the light’다.

하트원은 기존에 중복 점포로 폐쇄했던 하나은행 을지로기업센터 지점의 유휴건물을 리모델링해 지난해 11월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이다. 하트원(H-art1)은 하나은행(H)이 보유하고 있는 미술품(art)을 관람할 수 있는 금융권 최초의(1) 개방형 수장고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트원은 하나은행이 보유하거나 신진작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미술품 자문 및 신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아트뱅킹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 을지로4가에 위치한 하나은행 하트원. /김수정 기자

아트뱅킹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앞서 하나은행은 고객의 미술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하나은행은 자체보유하고 있는 3000여점의 미술품 중 일부를 하트원 2층에 전시하고 있다. 기존에 하나은행은 명동, 청라에 있는 수장고에 미술품을 보관해 왔지만, 창고 성격으로 외부에 개방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하트원 개관 후 수장고에 보유 중인 서양화, 동양화, 판화, 사진,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전시 주제에 따라 전시하고 있다. 도슨트(전시 안내인)도 상주해 있어 고객은 작품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전시 주제는 분기마다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3층으로 올라가면 아트뱅킹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 나온다. 이곳에는 미술품 신탁이 이루어진다. 금융사가 동산인 미술품을 신탁받아 처분까지 실행하는 곳은 하나은행이 최초다. 하트원은 미술품 신탁을 위해 전문 수장고에 작품을 안전하게 관리·보관한다. 하트원은 미술품 매입·매각 관련 투자 자문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를 위해 하나은행은 미술품 자문·감정 전문 업체와 제휴를 맺었다. 이런 서비스를 통해 하트원은 신탁 관련 수수료를, 제휴 업체는 상담수수료와 감정 실비 등으로 수익을 올린다.

하트원은 고객 미술품 수장고 서비스도 다음 달부터 개시한다. 최근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를 중심으로 ‘아트테크(아트와 재테크의 합성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값비싼 미술품의 경우 집 안에 보관하면 변색이나 마모 등 훼손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이를 위해 하트원은 고객의 작품을 보관해 주는 전문 수장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수장고는 크게 렉형과 선반형이 있다. 고객은 작품의 특성에 따라 보관 장소를 선택할 수 있다. 수장고에 작품을 보관한 고객은 언제든 작업실을 통해 자신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하트원은 하나은행이 보유한 작품뿐 아니라 신진 작가의 작품도 전시한다.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인 4층에서는 ㈜서울옥션, ㈜아트플레이스, ㈜이젤 등 아트테크 기업들이 발굴·육성 중인 작가들의 작품을 무료로 전시해준다. 또 하나그룹에서 신진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진행한 공모전 수상작도 전시한다. 이를 통해 신진 작가들이 예술활동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평일과 주말 각각 50~70명, 100~150명가량의 고객이 하트원을 찾고 있다.

서울 을지로4가에 위치한 하나은행 하트원. /김수정 기자

을지로4가에 하트원이 위치한 점은 아트뱅크 운영에 적절하다고 평가된다. 최근 을지로는 ‘힙지로(힙하다+을지로)’로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을지로4가는 BC카드, 대우건설 등 대기업이 밀집돼 있어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을 활용해 편하게 들릴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트원 뒤편 을지로4가 골목은 소규모 화랑이나 스튜디오가 다수 밀집해 있어 신진 작가 발굴에도 적합하다.

하나은행은 하트원을 활용해 하나아트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하나아트클럽은 하나은행 프라이빗뱅커(PB) 고객 중 예술에 관심 있는 고객들이 모인 커뮤니티다. 현재 멤버수가 900여명에 달한다. 미술작품에 막 관심을 가진 고객부터 하드 컬렉터까지 고객군도 다양하다. 하나은행은 하나아트클럽을 통해 컬렉터 간 미술 투자·자문 정보를 공유하고 고액자산가와 그 자녀를 위한 문화·예술 교육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또 하나아트클럽 멤버는 하트원 전시회와 아트페어 등에 우선 초대받는 혜택도 제공받는다.

하나은행은 하트원 운영을 비롯해 금융권에서 예술에 가장 관심이 많다. 하나은행은 2001년 아트 자산 관련 정기예금을 출시하는 등 고객들의 미술품 투자를 도우며 노하우를 쌓았다. 최근엔 2020년 서울옥션과 협업해 시중은행 최초로 미술품 전담 PB센터를 신설하기도 했다. 하나은행이 아트 산업 투자를 이어가는 데는 관련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창수 자산관리지원부 팀장은 “최근 MZ세대 사이에서는 아트를 투자 대상으로 보고 있다”며 “이런 트렌드로 은행도 아트 산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