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합정동에 있는 우리은행 원더바이브(WON THE VIBE)를 찾았다. 내부에 들어서면 브루노 마스, 에드 시런, 마룬5 등 유명 해외 팝 가수들의 LP가 200여개 전시돼 있다. 고객은 마음에 드는 LP를 골라 턴테이블이 놓인 책상에 앉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LP존 옆은 방명록을 남기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고객은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LP 존이나 전신거울 앞에서 즉석 사진을 찍은 후 인화해 가져갈 수 있다.
원더바이브는 우리은행이 20~30대를 고객으로 끌어모으기 위해 지난달 27일 문을 연 세 번째 팝업스토어다. 앞서 우리은행은 패션 플랫폼 무신사, 에버랜드 등과 손잡고 원레코드, 원스테이션 팝업스토어를 개점했다. 특히 이번 팝업스토어는 합정동 7번 출구 인근 상권인 합마르뜨를 활성화하고 이곳 소상공인과 상생한다는 목적으로 우리은행과 마포구가 함께 준비했다.
20~30대에 초점을 맞춘 이색점포인 만큼 내부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인테리어가 구성돼 있다. 소셜미디어(SNS)를 보고 이곳을 찾아왔다는 김모(25)씨는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레트로가 떠오르고 있는데 LP로 노래를 듣고 싶어 찾아오게 됐다”며 “은행 점포라고 하면 딱딱한 느낌이 있는데, 이곳은 기존 은행과는 다르게 친숙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앞서 원레코드와 원스테이션은 개점 기간 각각 3만5000명, 9만명의 고객이 찾았는데 그중 70~90%가 20~30대였다.
고객들은 원더바이브에서 음악을 듣고 사진을 찍으면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 팝업스토어 한편에 마련된 디지털데스크를 통해서다. 디지털데스크에서는 우리은행이 개발한 비대면 디지털 영업점이다. 고객은 디지털데스크를 통해 거래 내역 확인, 인터넷뱅킹, 예·적금 등 기본 업무에서부터 대출·펀드·신탁·퇴직연금 등 창구 상담이 필요한 업무까지 처리할 수 있다. 디지털데스크 화면 속 본점 디지털영업부 직원과의 화상상담을 통해서다.
고객은 디지털데스크에 앉아 화면의 상담 연결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화상상담 직원과 연결할 수 있다. 비대면이지만 위조나 사기 걱정은 없다. 디지털데스크에는 신분증, 인감, 손바닥 정맥 스캐너가 있다. 화상상담 직원은 고객의 얼굴과 스캔한 신분증을 대조해 신분증 진위를 확인한다. 또 이전에 손바닥 정맥을 등록한 고객은 정맥 인증만으로도 본인 확인을 통해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
디지털데스크를 이용한 고객은 은행 애플리케이션(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은행 업무를 비대면 상담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디지털데스크로 적금 상품 상담을 받은 이모(30)씨는 “최근 적금 상품에 가입하고 싶어 디지털데스크를 통해 문의했는데, 소비패턴과 신용정보를 바탕으로 연 최고 4.2%의 금리 혜택을 제공하는 적금 상품을 추천받았다”고 했다.
우리은행은 원더바이브에 온 20~30대를 고객으로 영입하기 위해 다양한 경품도 제공한다. WON뱅킹에 처음 가입하는 고객에게 텀블러, 틴케이스 등 굿즈를 제공한다. 또 인근 상점에서 1만원 이상 상품을 구매한 고객이 영수증을 보여주면 합정동에 있는 상점에서 판매하는 굿즈를 제공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사업도 펼친다. 이런 이벤트를 통해 앞서 원레코드와 원스테이션에서는 각각 하루 평균 3~4명, 30~40명가량 신규 고객을 유치했다.
앞으로도 우리은행은 팝업스토어를 통해 20~30대에 더 다가간다는 전략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20~30대 사이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이 시중은행을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에 맞서 점포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 시중은행은 팝업스토어와 같은 이색점포를 활용해 젊은 층에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은행권에서는 디지털전환으로 내점고객이 감소하면서 고객 모집을 위한 이색점포를 만들고 있다. 단순히 은행 업무만 보는 곳이 아닌 지역 주민의 커뮤니티 공간을 마련하거나 마트점포, 카페점포 등 이색점포들이 생겨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영업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3989곳으로 전년(4188곳)보다 199개 감소했다. 5대 은행 점포 수는 ▲2016년 4917개 ▲2017년 4726개 ▲2018년 4699개 ▲2019년 4661개 ▲2020년 4425개 등으로 꾸준히 해마다 100~200개가량이 문을 닫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디지털 시대인 만큼 수익성을 고려하면 은행 점포가 줄어드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라며 “과거처럼 기존 점포를 통해 고객 유치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이색점포를 마련해 내점 신규 고객을 끌어모으는 것이 은행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